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의 세계. 여기에서 질서는 공동체 존립과 발전의 토대가 된다. 즉 크고 작은 위험과 불확실성은 대부분 기초 질서를 무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대형건물이 무너지는 참사는 대부분 설계도와 다른 자재를 사용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무질서는 말할 것도 없이 저만 생각하는 이기심의 산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초 질서를 무시하는 의식구조와 행태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에서 "신호를 준수하고 정직하다가는 잘 살기 어렵다"는 답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우리 사회의 등대는 과연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전문가들에 따르면 질서 특히 기초 질서가 문란해지면 공연히 짜증이 나고 불화가 조성되면서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공격적이 된다고 한다. 물질 세계의 풍요나 빈곤과 관계없이, 질서가 없다면 사람들의 정신 세계가 건강할 수 없다. 무질서로 인한 사회적 비용(social cost)은 어떻게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무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탈락하는 오염된 상황이 전개된다. 시장에서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바른 소리를 하면 불평분자로 몰리기 쉽고, 모른척하고 가만히 있으면 비루한 방관자가 된다. 불평분자도 되지 않고, 방관자도 되지 않으려면 이래저래 피곤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는 지켜야 하고 다른 누구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질서는 사회를 좀 먹게 한다. 질서를 무시하는 환경에서는 단속에 걸린 위반자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신만 재수 없게 걸렸다는 억하심정을 갖거나, 나아가 보복을 당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질서가 문란해진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부패 불감증이 싹트게 된다.
`기초 질서를 확립하자`는 바람을 일으키다 흐지부지해버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무질서에 대한 내성이 생겨 질서 감각은 더 무디어진다. 예컨대, 「카파라치」 제도로 교통질서를 확립하려했지만 보상금이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단속이 없는 이면도로에서 교통질서는 무방비상태로 가고 있다. 카파라치 제도를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질서 확립에 이바지하고 결국에는 비용 또한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생각건대, 중장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국민소득 몇천 달러 높이는 일보다도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도록 유도하는 일이 더 절실한 일이다. 도덕성이야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어서 쉽사리 회복시키기 어려운 일이지만,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누구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누구나 지킬 수 있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간단명료한 `게임의 규칙(rule of game)`은 질서 확립의 필요조건이다. 규칙은 이리저리 많이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된다. 몇천 쪽에 이르는 해양사고 관련 매뉴얼을 힘들여 만들었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복잡하고 규칙은 오히려 질서를 해칠 수도 있다는 교훈이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한국에서 세무조사를 받으면 다치지 않을 기업이 많지 않다"는 푸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전문가들도 노상 헷갈리는 복잡다기한 조세 관련법 때문일 것이다. 심판의 잣대가 왔다 갔다 하든지, 사면권이 남용된다면 질서 의식 정립은 불가능해진다.
고대 그리스의 법철학자 솔론(Solon)은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법이 거미줄처럼 되면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고 하였다. 망나니 사금파리가 날아가면 구멍이 뻥 뚫리고, 연약한 나비나 잠자리가 날아가다 걸리면 죽게 되는 것이 거미줄이다. 아랫사람들에게는 똑바로 걸으라고 하면서, 막상 저들은 게걸음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한다면 질서는 더욱 문란해진다는 메시지다. "이유를 막론하고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끝까지 추적하겠다"며 장발장을 쫒는 「자베르 경감」같은 냉혈한이 때로는 필요하다.
유치원생들이 학교 주변 건널목에서 선생님 따라 줄을 서서 파란 신호를 기다리는데, 어른들은 거리낌 없이 신호를 무시하고 마구 횡단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다음 어른이 될 그 어린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지없이 두렵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