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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조화를 실현한 홍어 삼합

  • 2015.02.06(금) 08:20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삭힌 홍어에 돼지수육과 묵은 김치를 곁들어 먹는 홍어삼합은 굳이 전라도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 맛들이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알려진 것처럼 전라도에서 홍어 빠진 잔치는 아무리 잘 차렸어도 먹을 것 없는 잔치라고 했을 정도다.

때문에 잔칫날이면 홍어를 사다 퇴비나 장독대 항아리에 묻어 며칠을 삭혔다. 그러면 홍어 몸속 요소 성분이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코를 톡 쏘는 강렬한 맛이 나온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나주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다고 했으니 전라도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먹은 역사가 짧지 않다.

그런데 왜 그냥 삭힌 홍어도 아니고 삶은 돼지수육에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 홍어 삼합을 먹게 됐을까?

홍어가 귀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흑산도에서 잡히는 홍어는 서민의 경우 먹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비싸졌다. 옛날에도 홍어가 지금처럼 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싸구려 생선은 아니다. 잔칫상에 올리는 물고기였던 만큼 옛날부터 고급 어종에 속했고 잔칫상에 올리기는 했지만 누구나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음식은 아니었다. 홍어 삼합이 발달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잔칫집 온 손님들이 간만에 홍어를 푸짐하게 먹고는 싶지만 쉬지 않고 홍어만 집어 먹다보면 염치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때문에 삭힌 홍어도 한 점 먹고 삶은 돼지고기도 한 점 곁들이고, 입안이 텁텁하다 보니 묵은 김치도 한 조각 집어 먹으면서 홍어를 눈치껏 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먹다보니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가 조합을 이루며 오며한 맛을 만들어 낸 것이 홍어 삼합의 탄생 배경이라고 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삭힌 홍어,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 등의 세 가지 음식이 절묘하게 궁합을 이루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삼합(三合)이라는 이름 또한 절묘하다. 삼합은 명리학에서 최상의 조합을 이룬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다. 하늘과 땅,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삼합이니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가 합쳐져 우주만물의 조화를 이루었다는 뜻 내지는 세 가지가 합쳐진 맛이 삼라만상이 조화를 이룬 맛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어쨌든 홍어 삼합이 조화를 이루니 다음부터는 다양한 세 가지 음식이 모두 화합을 시작해 우주에 새로운 음식 맛의 길을 열었다. 전남 장흥에서는 키조개와 한우 쇠고기, 표고버섯으로 삼합을 이루어 키조개 삼합을 탄생시켰고, 경남 거제도에서는 조죽삼 삼합을 만들었다. 조개와 죽순, 삼겹살을 먹는 것이고 울산에서는 언양 육회에 개불, 배를 곁들여 울산 삼합까지 탄생했으니 곳곳에서 우주가 화합해 만들어 내는 최상의 조합이 탄생하고 있다.

아무리 홍어 삼합이 명리학에서 말하는 최상의 조합이라고 해도 막걸리 한 잔을 더해야 최고의 맛으로 승화한다. 홍탁이 좋은 이유는 삭힌 홍어를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우주 조화를 이루는 맛과 막걸리의 유기산이 삭힌 홍어에서 나오는 암모니아의 지나친 자극을 중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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