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목소리는 한결 같다. 조금은 느릿한 템포에 톤은 늘 조용하고 나즈막하다. 여기에 경상도 사람 특유의 억양이 정겹다. 마주한 사람으로 하여금 푸근한 인상을 준다. 공식석상에서 권 회장은 늘 같은 목소리를 유지했다. 차고 넘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지난 15일 열린 포스코 기업설명회(IR)에서 권 회장의 목소리는 종전과 달랐다. 단상에 올라선 권 회장은 평소와 달리 살짝 높은 톤으로 또박또박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쓰여진 원고를 읽는 것이지만 말 한마다 한 마디에 힘이 실렸다. 특히 '반성'을 이야기 할 때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통상 기업 설명회의 메인은 실적이다. 실적을 두고 회사 경영진과 시장 관계자 등이 모여 질의 응답과 설명이 오가는 장(場)이다. 하지만 2분기 포스코 기업 설명회의 메인은 달랐다. 권 회장은 기업 설명회가 진행된 1시간 반 동안의 대부분을 '경영쇄신안 발표'에 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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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회장의 발언 내용은 무척 강렬했다. 특히 "저를 포함한 모든 포스코 임직원들은 과거의 자만과 안이함을 버리고 새로 창업하는 자세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인상적이었다. 포스코는 지난 50여 년 가까이 국내 철강업계를 좌지우지해 왔다. 그런만큼 자부심도 강했지만 자만했던 것도 사실이다.
수십년간 불공정한 관행이 지속돼왔다. 포스코와 거래하는 수 많은 업체들은 포스코의 불합리에 대해 일언반구도 할 수 잆었다. 그만큼 포스코는 절대 '갑(甲)'이었다. 한 중소 철강업체 대표는 "감히 누가 포스코를 거스를 수 있겠냐"며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당장 밥줄이 끊기는 것보다 견디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권 회장의 '고해성사'는 이례적이다. 그동안 포스코가 공식적으로 스스로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어두운 부분을 스스로 들춰내고 고해성사를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놀랍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권 회장과 포스코가 이처럼 스스로 자세를 낮춘 까닭은 뭘까. 포스코는 지난 5월 경영쇄신위원회를 구성했다. 포스코는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윤리적이고 깨끗한 기업으로 알려져있었다. 하지만 검찰의 비리 수사로 숨겨졌던 사실이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포스코의 위상은 대내외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윤리'의 대명사였던 포스코가 알고보니 '비리의 온상'이었다는 대반전은 포스코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포스코는 경영쇄신위원회를 통해 문제점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이 바로 스스로를 낮추고 그동안 애써 무시해왔던 자만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었다. 반성이 없으면 새로 출발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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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경영쇄신위원회에서 참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그 중 가장 마음을 후벼팠던 것은 그동안 포스코가 얼마나 거만하고 상황 인식에 안일했는지에 대해 반성할 때였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그것들을 반박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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