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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당신의 이야기

  • 2020.03.13(금) 10:44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평소 같으면 삼삼오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운동장이 텅 비어 있다.

코르나19의 위력이다.

외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람들도 못 만나다 보니

심리적 불안감과 함께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정마리아 대표는 중국 상하이에서

찻집 '연화산방'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상해'라는 블로그를 통해

중국의 문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두 나라 간 차와 향 문화 교류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다만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준비 작업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저희도 2월 말까지 영업을 중단했고

3월 첫 주부터 오픈 허가를 받아서

정상 영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시간에 맡기고 하나씩 노력하고 있는데

저희는 물론 우리 모두가

일상으로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정 대표는 중국 문화부가 주관하는

'향도' 과정을 이수했다.

"'향도'는 아직 국내에선

낯설고 또 익숙하지 않은

문화 중 하나인 듯합니다.

쉽게 말하면 차를 내리는 행위죠.

중국에선 '차예'라고도 하고

일본에선 '다도'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향을 짓고 사르는

행위가 바로 '향도'인 거죠."

"중국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

'향도'를 계승 유지하고 있어요.

때때로 부족했던 것은 채우면서

새 시대에 맞는 '향도'를 만들어내고

문화 속 '향도'를 부활시키고 있죠.

그 과정을 단계별로 나눠 교육하고

테스트를 거쳐 '향도'를 잇고 있어요.

저도 그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신라와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보면 향도가 있었는데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스님들 사이에서만 고요하게

내려오는 '향도'가 있다고 합니다."

차와 만난 인생 이야기가 궁금했다.

"97년 중국 천진에서 유학을 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커피 문화가

일반화되지 않은 환경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천복'이란

대형 브랜드 찻집을 찾곤 했는데

그게 차와의 첫 만남이었어요.

그 후 상하이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차에 대해 더 많은 경험을 쌓게 됐죠.

처음부터 차를 사랑한 건 아닌데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서서히 곁에서 익숙해진 듯합니다."

"SNS가 한창 활발하던 시절

첫 번째 차 스승을 만났어요.

한중간 차 문화를 교류하면서

이 차 저 차 다양한 차를 마시고

경험한 게 벌써 12년정도 됩니다.

차를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차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데

차 과정을 마친 후 느낀 점은

차를 안다는 것은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과 만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어요.

이제 좋아하는 차를 조금 알고

다른 이들이 말하는 맛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단계인듯해요.

차를 마시기 전에

다구(차도구)를 알아야 하고

기본이 되는 '물'에 대해서도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차는 그냥 마시는 음료일 뿐인데

그렇게 복잡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은 당연히 할 수 있어요.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하나하나 정성을 들이면

그 본질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그 본질을 들여다보다 보면

그 찻잎의 환경이 궁금해지고

그 환경을 보면 물이 보이고

그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자연이 있어요.

차 종류만 오천 가지가 넘어요.

우리가 과연 차를 안다고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마시는 차는 어떤 것이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건

분명 재미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차는 일상이 됩니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 대표는 이 봄철 지인이 찾아온다면

과연 어떤 차를 내려주고 싶을까.

"잠시 상상을 해봤다.

과연 누가 찾아오셨을까?

여러 사람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차가 있지만

이럴 때는 누구나 부담 없이

쉽게 마실 수 있는 발효가 잘 된

흑차 계열을 내려 드리고 싶어요."

"특히 요즘 같은 때엔

기운이 좋은 차가 좋을듯해요.

제 차 스승님이 직접

운남 남나산 반파노채(半坡老寨)에서

채엽한 300년 수령의 차가 있어요.

아주 귀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겐

이 차가 하나도 아깝지 않지요.

그 또한 차를 내리는 사람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으며

맛과 향이 과하지 않고 향긋하며

목 넘김이 부드럽고 시원합니다.

안팎에서 긴장해야 할 요즘

차 한 잔이 위로가 됐으면 해요."

정 대표는 드립커피도 좋아해

바리스타로도 일하고 있다.

차와 커피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차는 시간을 따로 내서

마시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커피는 '브레이크 타임'

차는 '티 타임'이라고 하잖아요.

둘 다 큰 즐거움이 됩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커피는 기분을 깨어나게 하지만

몇 잔씩 계속 마시지는 못합니다.

반면 차는 몇 시간 동안 이어서

계속 마실 수가 있어요.  

전 하루 종일 또 하루를 넘겨가며

차를 마시는 자리도 흔해요.(웃음)

여러 종류의 차를 나눠 마시며

맛과 향을 함께 느끼고 음미하며

자신의 차를 가져와 돌아가면서

내려마시는 즐거움도 있답니다."

정 대표는 차를 가운데 두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매번 어떤 감정을 느낄까.

"사람들과의 만남은 다양해요.

차 역시 만남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매개이긴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닐까요.

아무리 좋은 차라도

아무리 좋은 커피라도

그 사람이 불편하다면

모두 무용지물이 됩니다.

전 차를 하나의 인격체처럼

생각하면서 만나고 대합니다.

내가 먼저 귀하게 다룰 때

다른 이들도 그걸 귀하게 아껴주죠.

차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고

저 역시 차를 닮아가고 싶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사람 간 대화를

마스크 한 장으로 차단했다.

재채기 한 번도 눈치가 보인다.

세상은 계속 팍팍해지고 있지만

그렇게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각자 차 한 잔 앞에 두고

당장 직접 만나진 못해도

핸드폰 넘어 안부를 물어가며

따뜻한 이야기로 봄날을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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