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 쪽으로 걷다 보면
커다란 향나무가 눈길을 끈다.
나무 근처엔 이런 글이 있다.
나이가 너무 오래되어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약 800~1000년으로 추정하고
꽃말이 '영원한 향기'이듯
저를 만난 모든 분에게
행복의 기운을 가득 드리겠다는.
향나무 옆 이드라카페에선
노년의 바리스타가
정성스레 커피를 내리고 있다.
주인공은 채익희 바리스타.
"이드라는 그리스에 있는
작은 섬 이름입니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만이라도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으로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카페 이름을 지었어요.
저흰 핸드드립 전문입니다.
향나무의 꽃말처럼
한번 커피 맛을 보면
오래오래 기억되는
커피를 드리려고 해요."
"원래 직장 생활을 했어요.
집안 모두 커피를 즐겼는데
다만 좋은 커피가 뭔지
맛있는 커피가 뭔지 몰랐죠.
다 똑같은 커피로 알았어요.
믹스나 다방커피처럼
일반적으로 마시는 커피가
다 같은 커피인 줄 알았죠.
그러다가 우연히 지인이
갈아준 드립커피를 마셨는데
거기서 충격을 받았어요.
처음 경험한 커피 맛이었죠.
그다음부터는 커피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게 25년 전 일입니다.
커피를 알지 못했을 때는
그냥 쓴맛과 설탕 맛만
있는 줄 알았던 거죠.
커피 맛을 전혀 몰랐어요."
"직장은 30년쯤 다녔어요.
이 카페를 오픈한 지는
8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더 맛있는 커피를 계속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기존 회사서 정년퇴직 후
커피를 배우러 다녔어요.
학원에서 배우기도 했는데
창업 위주의 교육이다 보니
커피머신을 비롯해 자격증을
따기 위한 수업 위주였어요.
제가 배우고자 하는 방향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서
핸드드립 전문가를 소개받아
로스팅 핸드드립 등을 배우며
커피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커피에 대한
열정이 다 채워지지 않아
논문까지 찾으며 공부했죠.
커피가 왜 그렇게 좋은지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죠.
커피에 푹 빠져있던 중에
빈 가게가 나왔으니
카페를 한 번 해보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았어요.
단지 커피가 좋아서
몇 년간 공부를 하긴 했는데
창업은 생각해 보지 못했죠.
처음 오픈한 카페는
지금 자리 조금 옆에 있었는데
주변보다 임대료가 낮아
일단 부담이 크지 않았어요.
임대료만 낼 수 있으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시작했어요."
"맛있는 커피를 찾아
이곳저곳 다닌 지 10년
커피를 공부한 지 2년 정도
지난 시점에 카페를 오픈했죠.
당시엔 커피에 대한 열정이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어요.
바리스타대회가 열리면
순위에 입상한 분들이
만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모두 다 찾아다녔어요.
그러면서 맛있는 커피는 물론
커피가 왜 맛이 없는지도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커피를 알고 파는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가게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커피 맛이 달라요.
나름대로 각자의 커피 맛을
내기 위해서 노력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커피 맛은
일단 쓰지 않아야 해요.
쓴맛을 좋아하는 분들도
주변에 더러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볼 때 쓴맛은
좋은 맛이 아니었습니다.
원두가 로스팅 과정에서
타지 않아야 합니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가
좋은 맛을 내는 건
당연한 이치인 거잖아요.
커피도 농장에서 얼마만큼
관리를 잘했는지가 중요해요.
고산지대서 자란 커피 열매가
일반적으로 맛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많이 평준화됐어요.
커피를 진짜 좋아하는 분들은
일일이 현지농장을 찾아다녀요.
그런 분들과 비교하면
전 아무것도 아니지요.
개인적으로 산지 커피를
가장 좋아하긴 합니다.
산지에서 얼마만큼
좋은 생두를 생산하느냐
얼마나 관리를 잘하느냐가
첫 번째 커피 맛을 좌우합니다."
“다음 단계는 로스팅입니다.
생두의 특징적인 맛을
낼 수 있도록 볶는 과정이죠.
로스팅 과정을 잘못하면
생두가 가지고 있던
원래 맛을 잃어버립니다.
로스팅은 수많은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커피를 알고 나서
왜 커피를 태워서 먹는지
그 이유가 가장 궁금했어요.
그래서 커피를 안 태우면
어떤 맛이 나나 연구했더니
신맛이 많이 났습니다.
신맛을 싫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죠.
사실 다들 쓴맛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거예요
원두에서 나오는 신맛은
아주 매력적이에요.
개인적으론 안 태운 커피를
더 추천하고 싶어요."
"그다음은 커피를
내리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커피의 맛이
또 많이 달라집니다.
내리는 사람에 따라
커피 맛이 변하거든요.
처음부터 맛을 내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고요.
시간을 두고 자기만의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드립커피는 수동으로
갈아서 드시는 게
가장 맛이 좋습니다.
전동 그라인더보다는
핸드밀로 분쇄하는 게
커피 맛이 훨씬 좋아요.
필터는 기본적으로
종이필터와 융필터
프렌치프레스가 있어요.
커피엔 지방 성분이 많아요.
그 지방 성분을 잡으려면
종이필터가 가장 안전해요.
커피 맛이 깔끔하고 깨끗하죠.
맛난 커피를 한잔하게 되면
그 이유를 찾게 됩니다.
제 아내도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끔씩 도와주러 와요.
같은 도구와 원두를 사용해
나란히 커피를 내리더라도
그 맛이 또 달라요.
서로 내 커피가 맛있다고
언쟁 아닌 언쟁을 합니다.
지금까지 우열을 못 가리고
언쟁만 이어오고 있죠.(웃음)"
"유럽은 에스프레소를 마셔요.
거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어요.
사람들이 커피를 접하게 된
이유는 카페인 때문입니다.
커피 열매를 먹은 양들이
기분이 더 좋아지면서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걸
목동들이 본 거지요.
양들이 왜 저러지 하면서
커피 열매를 따먹은 게
바로 커피의 시작입니다.
커피를 먹으려고 갈아도 보고
그냥 먹거나 끓이기도 했겠죠.
과거 유럽은 전쟁이 많았어요.
잠을 최대한 줄여야 했죠.
그래서 카페인이 많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된 거죠.
그 문화적 배경이 이어져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있어요.
아메리카노는 미국이
영국 식민지 지배를 받을 때
커피는 마시고 싶은 데
그만큼 돈이 없어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기 시작하면서
탄생하게 됐습니다.
커피의 재미난 역사들은
그 시대 문화와 직접
연결이 되어있는 거죠."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 있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님과
아내인 윤정희 선생님입니다.
그분들의 욕심 없는 삶
소탈한 삶을 보면서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널리 알려진 분들인데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정말 화려한 게 없어요.
처음 카페를 오픈했을 때
부부가 가끔 찾아오셔서
커피를 드시곤 했는데
욕심 없는 삶의 모습들이
제게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지금 저에겐 결코 돈이
행복의 조건이 아닙니다.
물론 저도 젊었을 때는
부자가 되고 싶었지요.
열심히 돈을 모아서
사고 싶은 차를 샀어요.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훨씬 좋은 차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만약 제가 더 좋은 차를
샀다면 과연 만족했을까요.
아마 더 좋은 차가
또 눈에 들어왔겠지요.
포기하니까 너무 편했어요."
채 바리스타는
아침 청소 후 마시는 커피
바쁜 점심시간이 지난 후
한가롭게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또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모두가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어려움을 함께 잘 이겨내고
멈춰진 섬 같은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때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