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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2020.03.20(금) 10:34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서울 명동은 언제나 북적인다.

길을 걸을 때면 이 사람 저 사람

옷깃을 스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엔 한적 그 자체다.

평일 오후 명동을 걷는 사람들은

그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다.

코로나19 탓이다.

길을 걷다 보면 모르는 이를 만나고

또 자신이 모르는 길을 묻기도 하고

때론 반가운 지인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마스크를 한 채 피해 다니기 바쁘다.

 

각종 공연과 전시회도 줄줄이 취소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전시회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예술가들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설령 전시회를 축소해서 열더라도

불안한 마음에 알리기도 쉽지 않다.

지난 18일 충무로 브레송 갤러리에서

묵묵하게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는

손은영 작가를 만났다.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어려워요.

특히 연세가 드신 분들에게는

아예 초대장을 드리지 못했어요.

많은 분들이 전시장에 오셔서

응원해 주시면 물론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오픈식 없이 지인들 몇 분과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려고 해요.

전시를 미뤄볼까 생각도 했는데

예정된 일정이고 갤러리 사정도 있어

피치 못하게 축소해서 열게 됐습니다."

전시 제목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요즘 상황을 말해주는 듯한 주제다.

"인물 사진을 꼭 찍고 싶었어요.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아

인물 사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제가 속한 사진 동아리가 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지역을 정해서

사진을 찍으러 이곳저곳 다녔어요.

3년 동안 많은 지역을 다니면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찍었어요.

첫해는 강원도와 제주도

다음 해는 전라도, 작년에는 충청도

이 지역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중간 정리하는 의미의 전시회죠.

앞으로 더 많은 지역을 다니며

계속 인물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그 전엔 서울 지하공간에 관심이 많아

서울지하철과 관련된 전시를 했어요.

강원도 고성 산불 사진도 찍었어요.

당시 사진 초기 인화법을 선택해

올드 프린트 작업으로 전시를 했죠.

고성에 8개월 정도 머물며 찍었는데

그분들의 아픈 마음과 상처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반다이크 브라운(VanDykeBrown Print)

180년 전 만들어진 인화법입니다.

풍부한 디테일과 갈색 모노크롬으로

사물들을 느낌 있게 표현해 냅니다.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대학교 때 배웠던 그 과정과

너무 흡사해서 놀랐어요. 

판화지(전지와 2절)에 직접 붓질하고

잘 건조한 후 인화지를 만들고

자외선으로 빛을 쏘이게 되면

최종 사진을 만들 수 있는데

작은 오차에도 결과는 전혀 달라

시행착오를 많이 경험했어요.

초기 인화법까지 꺼낸 이유는

작가로서 기록도 중요하지만

지역을 다니면서 느낀 감정들을

나름대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아요."

"반면에 이번 전시는

즐겁게 여행하듯 사진을 찍었어요.

낯선 지역 낯선 분들을 만나면서

포즈를 부탁하면서 사진을 찍었죠.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참 즐겁게 행복하게 작업했어요.

톤도 밝고 따뜻한 작품이 많아요.

제가 먼저 행복한 마음가짐으로

길 위에서 그분들을 만났거든요.

어르신들께서 노인정을 가면서도

핑크빛 옷에다 귀걸이까지 하고

마치 소풍가듯 즐거워하는 거예요.

저 또한 그런 어르신들을 쫓아

소풍 가듯 따라가며 즐겁게 찍었죠."

"밭으로 사진을 찍으러 가면

무도 뽑아주고 딸처럼 대해주던

그분들의 따뜻한 인간미와

넘치는 정이 사진에 담겨 있죠.

인물 사진은 소통이 중요해요.

인물은 먼저 말을 걸어야 하죠.

의도를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야 해요.

적절한 배경도 찾아야 합니다.

그런 과정들이 때론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보람이 있어요.

한 컷 한 컷에 추억이 묻어있어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시는데

길에서 어떤 어머님을 만났어요.

거동이 좀 불편하셨는데

집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달달한 믹스커피를 밥그릇에

한 잔 타 주셨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벽에 가족사진이 걸려 있어

가족 이야기를 여쭤보았어요.

그런데 막 우시는 거예요.

아들이 세 명 있었는데

두 명이 먼저 사고로 떠났다며

슬픈 과거사를 들려주셨는데

그 사진은 차마 찍지 못했어요.

대신 그 어머님의 사진은

마음 속에 담아 왔죠."

"사진은 우연한 기회에 만났어요.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찍고 싶어

처음으로 카메라를 샀어요.

그런데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는

사진은 절대로 안 찍겠다고 했죠.

그래서 자연을 찍기 시작했는데

회화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게 8년 전쯤 일인데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제 인생의 길 위에서

사진 작가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은 한정된 공간에서

혼자 작업하는 거잖아요.

정말 외로운 작업이거든요.

살면서 누구나 시련이 있잖아요.

홀로 그것을 이겨나가는 게

많이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어요.

사진기를 다시 들고 밖으로 나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기 시작했고

여행하듯 이곳저곳 많이 다니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었어요.

그림은 세상과 단절돼 있다 보니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웠는데

사진은 소통이 필수적이었죠.

그렇게 밖으로 나오면서

제 인생의 길 위에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거죠.

사람들 때문에 힘들고 상처받지만

또 사람들 때문에 위로를 받고

위안을 얻는 게 우리 삶인 듯해요."

그는 비주류 사진관회원이기도 하다. 

정남준 상임대표가 고생한 그에게

막걸리 한 잔 따라주고 싶다면서

멀리 부산에서 찾아왔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본적으로

대중과 친숙해지기 어려운데

손 작가가 그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손 작가의 인물 사진을 보면

선 배경까지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이면서 또 친숙하게

다가오도록 사진을 찍었어요.

개인적으로 많이 고맙죠."

꽃 피는 봄

코로나 사태가 빨리 끝나고

길 위에서 많은 람들과

웃으며 만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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