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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잔혹사]② 낙하산 거부의 참극

  • 2013.12.04(수) 14:26

한국거래소, MB 낙하산 거부 후폭풍
전방위 감사,공공기관 지정

정권 고위층에서 '낙하산'을 내려보내면 거부하긴 좀처럼 힘들다. 남은 임기를 다 마치겠다고 버티다간 그 파장이 간단치 않다. 검찰이 제대로 손보고 있는 이석채 전 KT 회장의 경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와 CEO의 임기가 딱 들어맞으면 자연스럽게 새 낙하산이 취임하면 된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까지 어수선한 시기에 새 정권의 낙하산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2008년 한국거래소(KRX) 이사장 선출이 바로 그랬다. 이후 거래소는 '피의 보복'을 당했다.

 



◇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 '쿠데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2008년 2월 14일 정치권과 여의도 증권가를 술렁이게 했던 소식이 전해졌다. 참여정부 시절 한국거래소를 이끌었던 이영탁 전 이사장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 아니 사실상 '내정'됐던 이팔성 전 우리금융회장이 후보자 9명 중 3명의 최종 면접 대상에도 들지 못하고 탈락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음악과는 연관이 없는 고려대 후배 이팔성을 서울시향 대표이사로 발탁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두터웠다. 거래소 안팎의 관계자 모두 이 전 회장이 당연히 거래소 이사장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선탈락'이라는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같은 해 2월26일, 대통령 취임식 바로 다음날 이변은 '쿠데타'로 이어졌다. 한국거래소는 신임 이사장 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3명의 후보 중 이정환(사진) 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뽑았다. 이정환 이사장은 전임 이영탁 이사장의 최측근으로, MB 정부는 이를 참여정부 잔존세력의 반란으로 여겼다.

◇ 금융당국·검찰·감사원..'표적 사정'
 

3월 21일 임기 3년의 거래소 이사장에 취임한 이정환 이사장과 한국거래소는 MB정부의 손보기 대상에 올랐다. 정권 초반 서슬퍼런 사정의 칼날에 '시범케이스'로 딱 걸린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먼저 나섰다. 이사장 취임 열흘 뒤 금감원은 거래소에 대한 2007년 종합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골프접대비 등 경비지출이 과도하다며 방만경영 대상자들을 징계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5월에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가 들이닥쳤다. 부산 본사와 서울 여의도 사옥 이사장실까지 압수수색한 검찰은 그해 8월까지 비리 의혹을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거래소 임직원 중 사법처리 대상자는 없었다. 자회사인 코스콤 직원 3명이 협력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게 다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감사원 감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거래소가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되느냐를 두고 논란이 컸다. 1988년 민영화된 이후 2005년 코스닥 등을 합쳐 통합 주식회사로 출범한 거래소가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사는 이어졌고, 감사 결과 별다른 비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 '낙하산' 내려보내려 제도·규정도 바꿔

이같은 전방위 '3각 사정'에도 이정환 이사장이 해를 넘기며 버티자 정부는 거래소를 공식적으로 '낙하산'이 가능하게끔 제도를 바꾼다. 증권사 등이 주주인 주식회사 한국거래소를 예산, 인사 등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정식으로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됐고, 국회 국정감사 등을 받아야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증권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나라는 슬로바키아가 유일했다. 

결국 이정환 이사장은 2009년 10월 임기를 절반 가량 남겨두고 물러났다. 그는 퇴임사에서 "임기 내내 사퇴 압박을 받았다"며 낙하산 좀비론을 펼쳤다. "좀비들의 생명은 짧다. 주체성이나 원칙과 정도 같은 철학과 영혼 없이 그저 교주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 1년 임기 이사장도 중도 탈락


이런 사태 끝에 이명박 대통령은 끝내 고려대 후배를 거래소 이사장에 앉힌다. 이미 이팔성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보냈고, 또 다른 고대 후배인 김봉수(사진) 키움증권 사장을 '공모'를 통해 이사장에 임명한 것이다.

 

그러나 굴욕은 이어진다. 임기 3년을 마친 김봉수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연임에 성공한다. 단 3년 임기가 아닌 1년 기한의 단명 이사장을 맡게 된다. 몇 달 뒤 바뀔 정권이 새로운 이사장을 내려보낼 때까지 임시직 자리를 수락한 것이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이마저도 채우지 못했다. 지난 5월 정확히 임기 1년의 절반, 6개월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다. 현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은 임기 3년을 무사히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그 후임은 3년이 아닌 어정쩡한 기간 동안 거래소 이사장을 지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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