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정 기간 관련 업무 경력이 없으면 공공기관 기관장과 감사 등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낙하산 방지책을 시행하겠다’고 보고했다.
김상규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차관보)은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산하에 ‘임원 자격기준 소위’를 구성해 상반기 안으로 임원 직위별 세부 자격 요건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우선은 지침으로 규정하지만, 지침이 활성화하면 법률로도 제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회계사 경력이 있는 사람에 한해 감사에 선임하는 등 경력과 경험 등을 공공기관 인사의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며 “유사 경력조차 짧은 정치인, 군인 등을 공공기관 주요 보직에 낙하산으로 앉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낙하산 방지대책의 타깃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러면서 ‘호주와 그리스 등에서 활용하는 5년 이상 관련 업무 경력 등 계량화한 임원자격 기준을 만들겠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어쨌든 말 많고 탈 많은 ‘낙하산’과 관련한 사실상 처음 나온 정부의 개념 정의여서 관심을 끈다.
▲ 2013년 9월 26일 오후 서울 내곡동 헌인릉에서 바라본 상공에 건군 제65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준비 중인 장병들이 고공 낙하를 하고 있다. |
◇ 또 다른 불씨의 낙하산 방지책
정부의 이런 생각은 앞으로 새로운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일단 정부의 이번 발표는 공공기관 낙하산 문제에 국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공기관엔 금융회사도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한국거래소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기관이 아니더라도 금융회사들은 늘 낙하산 논란의 최전선에 있다.
정부가 마련한 기준은 현재 금융계의 현실과는 오히려 반대 방향이다. 국내 대부분 금융회사의 감사 자리는 상당수가 금융감독원의 몫이다. 금감원은 현재 이런 낙하산 문제와 관련해 일종의 제척 기간을 두고 있다. 은행이나 보험, 증권 등 관련 업무를 본 사람은 2년 동안 해당 금융회사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척 기간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은행 파트의 사람이 증권사의 감사로 나가고, 증권이나 보험 파트의 전문 인력이 은행 감사로 가기도 한다. 관련 규정은 안전행정부의 공직자윤리법이다.
이런 규정은 기본적으로 업무상 관련도가 높으면 해당 금융회사와 유착 가능성이 높아 감사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번에 기획재정부의 계획을 보면 반대로 관련 업무 경력이 있어야 낙하산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행안부도 정부다.
감독 당국 근무자 등 공직자에 적용하는 규정과 소위 정치인 낙하산을 막기 위한 기획재정부의 타깃이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낙하산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180도 다른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공직자이건 정치인이건 낙하산이라는 점에선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같은 문제에 다른 취지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분명히 이상하다.
◇ 금융계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시큰둥
이 계획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불씨인 셈이다. 좋든 싫든 낙하산 문제의 최전선에 있는 금융회사를 보면, 낙하산의 기준은 정부의 생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많은 금융회사는 이왕 내려올 거라면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을 원한다. 감사가 업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일하는 데 불편해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획재정부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맞다.
그러나 낙하산 문제에 가장 민감한 노동조합 등의 태도를 보면 실상은 또 다르다. 업무를 알건 모르건 소위 힘센 사람은 오케이(OK)다. 언제든 문제가 터졌을 때 해결하기가 쉬워서다. 금융감독당국의 상당수 고위직 출신들이 여러 금융회사에 고문으로 가는 것이나,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등에서 이런 분들을 거액을 들여서라도 수집(?)하는 이유다.
이런 행태가 문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런 인맥을 활용한 활동이 얼마나 합법적이냐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낙하산 문제도 똑같다. 금융계에서 이번 정부의 낙하산 방지책을 보면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거나 “(공무원) 낙하산(주권)의, 낙하산 (자치)에 의한, 낙하산 (복지국가)을 위한 계획인 것 같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벌써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