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낙하산 인사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3년 만에 현직 국장이 지방은행 감사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여당인 새누리당 대표까지 나서서 낙하산이 웬 말이냐며 호통을 쳤다.
반면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공무원을 마피아에 빗댄 말)나 금피아(금감원 출신 인사)의 민간 진출 자체를 죄악시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해상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선순환시킬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모피아나 금피아 낙하산을 막다 보니 전문성이 전혀 없는 정치권이나 감사원 출신 낙하산이 판을 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선 정치권의 실세 낙하산 논란을 덮으려고 모피아와 금피아 낙하산을 더 옥죄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모피아 이어 금피아 낙하산 줄도 끊겨
이석우 금융감독원 감사실 국장이 최근 대구은행 감사직을 고사했다. 금감원 현직 국장이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3년 만에 금융권 감사로 직행하면서 낙하산 논란이 불거진 탓이다. 금감원은 당시 자체 쇄신안을 통해 감사추천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여기에다 금감원 국장 출신인 김성화 상호저축은행중앙회 부회장과 김동철 금융투자협회 본부장, 한백현 여신금융협회 부회장 등이 신한카드를 비롯한 금융회사 감사로 내정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언론을 비롯한 정치권이 곧장 성토에 나섰다. 특히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대형 금융사고 뒤에는 전현직 금감원 간부가 배후에 있다”면서 피감기관 재취업을 근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피아는 물론 모피아의 낙하산 줄도 끊겼다. 최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취임과 함께 산업과 기업 등 3대 국책은행장을 모두 민간 출신이 꿰찼다. 특히 수출입은행장은 전통적으로 모피아 몫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물러나면 시중은행장 역시 모두 민간 출신 차지가 된다.
◇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만난 격
금피아와 모피아의 낙하산 논란은 매년 인사철마다 도마에 오르는 단골메뉴다.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 후에도 의례적으로 민간 금융권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최근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직자 출신의 민간 금융권 취업을 제한하면서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가장 큰 문제는 최소한의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인사들이 그 자리를 속속 꿰차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들이 적절한 감사 후보를 찾지 못해 기존 감사를 연임시키는 해프닝도 있었다.
최근 선임된 사례만 봐도 그렇다. 문제풍 예금보험공사 감사는 새누리당 출신이고, 정송학 한국자산관리공사 감사는 구청장 출신으로 금융산업과는 일면식도 없다. 홍기택 산업은행장도 거시금융 전문가이긴 하지만 금융실무 경험은 전혀 없다. 그런 탓에 스스로도 낙하산이라고 지칭할 정도다.
법적으로 보장된 취업권을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지적도 있다. 현재 공직자윤리법은 고위직은 퇴직 전 5년간 업무와 관련있는 기업체에 퇴직 후 2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협회나 법무법인 등을 거쳐 민간으로 이동하는 사례 역시 법망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볼 수도 있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취업권이기도 하다.
◇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더 큰 모순은 정치권의 낙하산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최근 발표한 이른바 친박인명사전을 보면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임원으로 임명된 친박 인사가 84개 기관, 114명에 달했다. 대선캠프나 대선지지 활동단체 출신이 대부분이다.
서울경찰청장 출신인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과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 포기 댓가 논란에 휩싸인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홍보수석과 대변인을 지낸 이남기 전 수석과 김행 전 대변인은 각각 KT스카이라이프 대표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자리를 꿰찼다.
금융권에서도 홍기택 산업은행장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이 대표적인 낙하산으로 꼽힌다. 최근엔 공석인 주택금융공사 사장 자리에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김영선 전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이 정치권 낙하산 논란을 의식해 모피아와 금피아 낙하산에 더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엔 실세 낙하산을 내려보내려고 만만한 낙하산만 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정치권이 모피아와 금피아의 낙하산 논란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