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규모 해외 손실을 겪은 뒤 회복세를 보여온 주요 건설사들의 실적이 3분기 다시 꺾였다.
이번에도 해외 현장에서의 부실이 문제가 됐다. 정부의 부양책에 힘입어 국내 주택경기가 호조를 보였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받은 곳이 적지 않았다. 국내에서 아파트 팔아 해외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운 식이었다.
3분기까지의 실적은 올 한 해 경영 성적을 가늠할 수 있는 예비 성적표다. 작년 일부 건설사들처럼 갑작스러운 손실처리만 없다면 말이다. 삼성물산(건설부문)·현대건설·대우건설·대림산업(건설부문)·GS건설·현대산업개발·삼성엔지니어링 등 7개 주요 건설사의 1~3분기 실적을 들여다 봤다.
◇ 현대건설, 겉보기엔 최고지만...
현대건설은 상반기에 이어 3분기까지도 영업이익, 매출, 신규수주 등 주요부문에서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9.2% 증가한 6979억원, 매출은 24.2% 늘어난 12조2526억원이었다. 신규수주도 작년보다 32.8% 급증했다.
겉모습만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실적이지만 지난 4월 현대건설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이 비슷한 덩치의 현대엠코를 흡수합병한 것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2분기만 해도 합병 효과로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9.3%, 매출은 35.5% 급증한 실적을 거뒀지만 3분기에 뚝 꺾였다.
3분기 실적이 나빠진 배경에는 해외 현장에서의 사업차질이 있었다. 대형 프로젝트인 사우디아라비아 마덴 준공 이후 후속사업 연결이 지체됐고 리비아에서 내전으로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3분기 매출이 4조7000억원은 될 걸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4조2592억원에 그쳤다.
◇ 삼성물산, 신규 수주 뚝↓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3분기까지 누적 454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47.7% 늘어난 것이다. 매출도 작년보다 17.9% 늘어난 10조7931억원으로 집계됐다. '래미안' 브랜드의 주택사업 매출도 2조357억원으로 작년에 비해 50.2% 늘었다. 주요 건설사 중 가장 안정적인 실적이라는 평가다.
해외에서는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철광 철도시설)로 대표되는 토목사업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올들어 3분기까지 해외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하며 국내(전년대비 증가율 7.5%)를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토목사업 누적 매출은 3조371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36.2% 급증했다.
반면 향후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는 신규수주는 부진했다. 3분기 말까지 해외수주는 4조4714억원으로 올해 목표의 24.7%밖에 채우지 못했다. 국내를 포함한 전체 수주 규모도 작년의 절반에 그친다. 올초 최치훈 사장 취임 뒤 수익성 위주의 수주 전략으로 돌아선 때문으로 보이지만 수주 실적 저하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 대우건설,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대우건설은 해외에서 굵직한 사업 손실을 겪었다. 하지만 수 년째 업계에서 주택사업 실적이 가장 많은 건설사답게 국내 주택사업에서 낸 수익을 통해 영업이익 흑자 규모를 유지했다. 윗돌(주택사업 이익) 빼서 아랫돌(해외사업 손실) 괴는 식의 실적을 상반기부터 이어오고 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1.6% 줄어든 3199억원, 매출은 12.9% 늘어난 7조1682억원, 순이익은 24.8% 줄어든 980억원으로 집계됐다. 각 사업부문 가운데 국내 주택부문의 신장세가 뚜렸했다. 3분기까지 주택부문 매출이익은 2947억원으로 작년 1417억원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에서는 모로코, 오만 등에서의 발전 프로젝트가 공기가 늘어지고 원가율이 높아진 것이 원인이 됐다. 특히 오만 현장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체상금을 미리 반영한 것이 순이익이 크게 줄어든 배경이 됐다.
◇ 현대산업개발, 고마워요~ 부양책
국내 주택개발사업에 집중하는 현대산업개발은 경기 부양책의 수혜를 온 몸으로 받았다. 현대산업개발의 1~3분기 영업이익은 1490억원으로 작년 309억원보다 4배(382.2%) 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3조2291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작년 147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올 1분기부터 이익 규모를 키우고 있다. 수원 아이파크 시티 등의 사업이 잇따르며 전체 매출의 35%를 차지하는 주택 자체사업의 매출 증가율이 전년대비 61.2%를 기록했다. 도급(외주) 주택사업도 17.1%의 성장하며 사업 안정성을 유지하는 밑거름이 됐다.
◇ 삼성엔지니어링, 해외부실 '잔불' 정리중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 2조2067억원, 영업이익 322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이 늘었고 영업이익도 흑자전환한 것이다. 4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이익 규모는 직전 분기보다 줄었다.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6조6208억원을 기록, 작년 같은 기간 7조1179억원보다 7% 감소했다.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399억원이다. 미미한 이익규모에서 볼 수 있듯이 손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분기 영업이익률은 1.5%에 그친다.
이처럼 실적 회복세가 빠르지 못한 것은 국내 주택경기 회복의 수혜를 전혀 보지 못한 탓도 있다. 현대산업개발과 정반대다. 해외 부실 정리는 적어도 올 연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오는 12월 삼성중공업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 현장의 추가정산 협상 등 현안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게 선결과제인 셈이다.
◇ 대림산업, 터질 것 다 터졌나?
대림산업은 해외사업 주력시장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불거진 사업 손실로 3분기에만 연결재무제표 기준 189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작년 4분기에 이은 두번째 대규모 손실이다. 이번 실적 악화로 나이스신용평가는 대림산업 회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로 한 단계 낮췄다.
대림산업 건설부문만 따질 경우 3분기 영업이익은 263억원. 하지만 자회사로 잡히는 사우디 시공법인(DSA)의 영업손실이 2549억원 발생하면서 실적 악화가 나타났다. 하지만 의외로 시장에서는 대림산업이 '털 것을 다 털었다'며 4분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실적 발표 당일까지 하향세를 보이던 주가는 발표 다음날인 지난달 24일 5% 이상 급등했다.
◇ GS건설, 불안감 남는 턴어라운드
작년 건설업계 '어닝 쇼크'의 진앙지였던 GS건설은 올 들어 2개 분기 연속 흑자를 내며 연간 누적 영업적자에서 벗어났다.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168억원이다. 누적 매출은 6조7117억원으로 집계됐다.
GS건설은 흑자 전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사 현장의 수익성이 하락할 수 있고, 중동지역 정세가 불안해 목표치를 보수적으로 재산정했다"며 영업전망을 하향조정했다. 아직 해외 실적 악화의 불안감이 남아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를 각각 1조1000억원, 1000억원씩 내려잡았다.
향후 실적 회복의 기대를 걸 수 있는 분야는 '자이' 브랜드를 앞세운 국내 주택사업이다. GS건설은 올들어 재개발·재건축 등 국내 건축·주택 부문에서만 2조2370억원 어치의 일감을 따내며 해외 손실 만회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