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를 무조건 많이 짓는다고 주거복지가 완성될 수 있을까요. 양(量)으로 해결하는 건 한계가 있죠. 지금은 꼭 필요한 곳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필요한 곳에 수요만큼 충분히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재영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두 토끼를 좇고 있다. 정부의 주거복지 사업을 직접 실행하는 한편 그동안 쌓인 부채를 감축해야 하는 것이 LH와 3년의 임기를 절반 가량 넘긴 그의 책무다. 하지만 주거복지 사업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성과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적자 구조'다. 두 토끼를 한 번에 잡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LH의 본령(本領)인 주거복지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이 사장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비즈니스워치는 서울 강남의 한 강연장과 경기도 분당 LH 정자사옥에서 그를 만나 주거복지라는 사명(使命)에 대한 그의 철학과 이를 구현하는 LH의 역할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주거복지와 LH의 역할에 대한 그의 머릿속, 또 가슴속 생각을 문답식으로 재구성해 봤다.
▲ 그래픽 = 김용민 기자 |
- 전월세난이 또 심각해지면서 주거복지가 화두다.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도 주거비용에 대한 고민이 많다
▲ 주거복지가 시대의 화두가 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 우리나라 주거복지사업 시행은 LH 통합전 대한주택공사, 그리고 그 전신인 일제시대 조선주택영단(朝鮮住宅營團)부터 시작됐다. 조선주택영단을 거쳐 대한주택공사가 된지도 60년 가까이 됐다.
LH가 주거복지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돈은 안되고 민원만 많은 일이다. 하지만 LH의 설립 목적 자체가 주거복지다. 그래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을까. 실적만 생각한다면 하기 싫은 일일 수 있겠지만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다만 능력이 안 되는 게 아쉽다.
- 어떤 면에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가. LH의 재무상태 때문인가
▲ LH가 처한 상황부터 말해보겠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체 부채가 137조원, 이자를 내는 금융부채만 98조5000억원이다. 금융부채는 작년 한 해 7조2000억원 줄어든 것인데 이는 사상 처음이다. 이 규모가 감이 안올텐데 우리가 내는 이자만 작년에 3조7000억원에 달했다. 하루 100억원 이상을 이자로 냈다는 얘기다.
2003년 첫 통합 거론 당시 양사(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부채는 30조원 정도였다. 이후 10여년 동안 100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주택가격 폭등에 대응해 수도권 2기 신도시를 건설하고, 세종시와 혁신도시 등 지역균형발전 사업을 하면서 50조원 정도가 늘었다. MB정부 때 보금자리 사업을 하면서 또 50조원이 늘었다.
임대주택 사업은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대주택 재고가 작년 말 76만가구 가량 된다. 정부는 LH에 임대주택을 연 5만가구씩 지으라고 하는데 이 사업을 하려면 1채당 8000만원 정도가 들어 1년에 금융부채가 4조원 정도씩 늘어나게 돼 있다.
또 임대 운영과정에서도 임대료가 시세보다 싸다보니 운영적자가 1채당 100만원 정도, 1년에 7000억원 난다. 임대주택사업만 해도 매년 5조원의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상황에서 부채를 7조원 넘게 줄였다. 실질적으로 12조원 넘게 줄인 것이다.
- 부채를 어떻게 줄일 수 있었나? 부동산 경기가 회복세를 보인 게 보탬이 됐다고 볼 수 있나
▲ 정부 도움이 컸다거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서 가능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런 상황도 있지만 기회가 왔다고 아무나 그걸 잡는 건 아니다. 준비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 직원들에게 주문한 것이 3가지다. 판매 극대화, 원가 절감, 민간자본 최대활용이다. 기회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LH가 축적해온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감사한다.
LH는 기본적으로 자체 수입보다 많은 일을 해왔다. LH 매출이 연 20조원 되는데 그동안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많이 할 때는 32조원 정도씩 했다. 차이가 10조원씩 나다보니 차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투자비를 자체수입 범위 이내로 줄인 것이 부채 감소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사업물량을 줄이진 않았다. 정부 요구를 100%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체 사업비를 줄였다. 부족한 부분은 민간을 끌어들였다. 대행개발, 민관 공동개발. 공공임대리츠(REITs) 등을 통한 방식이다. 민간에 어떤 물건을 얼마에 사가겠느냐고 먼저 묻는 고객제안형 판매도 새로 도입한 방식이다.
▲ 강연중인 이재영 사장(사진: LH) |
- 다시 주거복지 얘기로 돌아와보자. 주거복지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
▲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자기 집을 자기가 구입해 살 수 있는 사람은 60%정도 뿐이다. 국민소득이 연 5만달러, 10만달러 되더라도 그렇다. 어차피 40%는 남의 집에 살 수밖에 없다. 이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와 사회의 책무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입자(40%) 중 절대다수가 전세든 월세든 민간 임대에 살고 있다. 공공이 제공하는 것은 6%에 그친다. 이를 OECD 평균(1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LH의 할 일이다. 민간 임대 시장(30%)은 LH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정부가 정책 수단을 통해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주거복지의 구체적인 실행 방도는 뭔가
▲ 양(量)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과거엔 '국민임대 100만가구 공급' 구호처럼 물량에 초점을 맞췄다. 이제는 필요한 곳에 수요만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땅을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건설비를 아낄 수 있다는 이유로 입지를 선정해 임대주택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철길 위에 행복주택을 짓겠다는 구상도 이런 생각들이 무의식 속에 깔려있어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 LH는 공공임대를 공급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LH는 주택공사 시절을 포함해 총 240만가구를 지었고, 토지공사 때부터 제공한 도시용지가 600㎢를 넘는다. 서울시(605.25㎢)만한 규모다. 하지만 그런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주거복지가 가장 핵심적 분야고 중요한 기능이다. 주택공급, 도시개발,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러 기능이 있지만 최후까지 LH가 책임져야 할 기능은 주거복지다.
이미 지어진 임대주택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동안 공급에 치중하다보니 운영관리 분야는 관심이 적었다. DJ정부부터 짓기 시작한 영구임대는 30년이 넘었고 국민임대도 이제 15년차를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는 매년 20년 넘는 임대주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자산을 어떻게 관리해야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존 단지의 재건축 시기가 왔을 때를 대비해 장기수선충당금을 기금화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상품성이 있는 임대주택은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다만 전체 물량을 줄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체 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 현재 수행하고 있는 주거복지 사업 가운데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 임대주택에 사는 분들이 더욱 인간답게 지낼 수 있도록 주거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임대주택 입주자들은 장애인 노약자 비율이 높은데 이들이 불편을 느끼거나 개선을 원하는 부분들을 빠르게 확인하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정보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임대 운영은 LH가 전담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나 비영리단체(NGO)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주거복지에 대해 지자체 역할이 미약한 곳이 없다. 7월부터 시행하는 주거급여(주택바우처)나 노후주택 보수 등에 대해서도 지자체의 역할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 이재영 LH 사장은
1957년 1월 경남 합천 출생으로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건설부·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에서 30여년간 주택·국토·도시 관련 업무만 맡아왔다. 토지국장, 국토균형발전본부장, 주택토지실장, 정책홍보관리실장 등을 역임했다. 부동산 실거래가 및 주택가격 공시제도, 분양가 상한제 폐지, 도시형생활주택, 주택청약종합통장제도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2011년 경기도시공사 사장을 거쳐 2013년 6월부터 LH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이재영 사장이 소개한 '공간과 도시(Space and the city)'
이 사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애플이나 삼성전자가 30년 뒤에도 살아 남을 수 있겠냐고 물으면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하지만 LH가 주거복지라는 공적영역을 책임진다면 그 수명이 100년도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거복지에 대한 기능을 다른 누구보다 잘 수행해야한다는 게 전제"라며 "우리나라는 시스템상 다른 나라와 달리 지자체 기여도가 적고 LH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최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에 실린 '공간과 도시(Space and the city)'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하면서 "주택 공급 문제가 우리 사회 양극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전체 자본소득 중에 주택을 통해 발생한 비율이 1950년대 3%였는데 2010년대 들어서는 10%까지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며 "주택문제가 해소되면 전체 경제가 더 발전할 수 있고 불평등도 완화될 것이라는 게 기사의 골자"라고 전했다.
그는 "지식경제다 정보산업이다 해서 사회가 변화하면서 토지의 중요성이 줄고 있지만 공간의 희소성은 그대로"라며 "이때문에 공공임대 같은 주택이 반드시 필요한 곳에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의 주거복지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