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에 힘입어 도약하던 해외건설이 저유가 여파로 위기에 봉착했다. 글로벌 건설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가격 경쟁력 중심으로 입찰에 뛰어드는 단순 도급방식 사업은 수익성이 뚝 떨어졌다. 국내 건설사들이 집중하고 있는 사업 형태다. 불확실성이 커진 해외 건설사업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찾아본다. [편집자]
벌써 수년째다. 대형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은 해외사업에서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투자개발 방식의 사업 확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설사들은 이에 맞춰 조직을 재편하고 인력도 재배치하며 사업 발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투자개발형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 "큰 그림 그리자" 조직은 새로 짰는데…
국내 건설업계 '맏형'으로 꼽히는 현대건설은 해외 사업 매출 비중 역시 61%(작년 기준 현대엔지니어링 포함) 가량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투자개발 사업 면에서의 성과는 미미하다. 현대건설이 지분 38.4%를 가진 '동생' 격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LG상사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가스전 개발 등의 대형 사업을 현지 정부와 발주처에 제안해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해외 투자개발 사업 실적이 없다.
이런 탓에 현대건설은 작년말 글로벌마케팅본부 조직을 마케팅사업부와 투자개발사업부로 양분했다. 마케팅사업부가 해외영업망 확대 등의 기존 업무를 맡는다면 투자개발사업부는 투자개발형 사업 확보에 집중토록 한것이다. 인프라환경사업본부 안에 인프라투자개발실이라는 별도 조직을 만든 것도 올해 확대될 이란이나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사업물량 등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 현대건설의 'total service provider' 모델 개요 |
삼성물산도 '밸류 체인(Value Chain, 가치 사슬)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설계·구매·시공(EPC) 앞뒤 단계의 투자와 운영을 포괄적으로 수행하는 모델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실적은 변변찮다. 사우디아라비아 쿠라야와 라빅2, 터키 키리칼레 등지의 민자발전 사업이 EPC 단계에서 추가비용 발생 문제로 고전 중이다. 관건은 시공 뒤 20~30년 동안 운영수익으로 손실을 얼마나 만회하느냐로 꼽힌다.
이 회사는 작년말 조직개편에서는 GBO(Global Business & Operations) 조직을 통해 해외사업을 강화하고 또 해외 조직을 현지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GBO 내 기존 동남아총괄은 AP(아시아·태평양)총괄로 변경해 호주, 아시아지역을 통합 관리하고 중동총괄은 MEA(중동·아프리카) 총괄로 확대했다. 사업 수행뿐 아니라 현지에서의 접점을 넓혀 더 많은 사업기회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대우건설 역시 작년 중장기 전략으로 2025년까지 '글로벌 인프라&에너지 디벨로퍼'로 성장한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역시 '기획제안형'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특히 침매(沈埋)터널, 초장대교량, 초고층·친환경 빌딩, 스마트 원전 등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기획제안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서도 해외 토목과 건축분야를 관장하는 글로벌인프라사업본부를 신설했으며,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수주·금융·기술지원 등을 총괄할 MENA(Middle East North Africa)사업본부도 신설했다. 또 작년 발전소 운영 전문 기업인 ㈜대우파워를 설립하기도 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경험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 제안·투자·금융 확보 위해 '동분서주'
대림산업의 경우 발전·에너지 디벨로퍼 사업 담당 계열사인 대림에너지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현지에 합작법인 '대림 EMA'를 설립하며 해외 투자개발형 사업을 채찍질하고 있다. 이 합작법인은 자원개발·인프라·플랜트 분야의 투자 사업에 강점을 가진 이슬람개발은행이 설립한 'IDB 인프라스트럭처펀드 Ⅱ'가 4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대림은 이 합작법인을 통해 중동·아프리카, 독립국가연합(CIS), 서남아시아 국가로 민자발전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2014년 말 물 관련 건설사업에 강점을 가진 스페인 아벤고아(Abengoa)와 수력발전·댐·상하수사업 분야 파트너십을 확보한 것도 물사업 분야에서도 디벨로퍼 사업자로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GS건설의 경우 투자개발형 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정책 금융지원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수주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이 회사가 작년 말 오만국영정유·석유화학(ORPIC)으로부터 수주한 천연가스액(NGL) 추출 플랜트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발주처가 건설사에 PF를 위한 자국 공적수출신용기관의 금융 주선을 주문했는데, GS건설은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로부터 지원을 끌어내 최종 계약자로 선정됐다.
▲ 국내 건설업계가 수주 추진중인 해외 사업(자료: 국토교통부) |
정부도 건설사들의 투자개발형 사업 확대를 위해 공공기관과의 동반 진출이나 정책금융기관 등을 통한 금융지원을 독려하고 있다. 투자개발형 사업에 공공·민간이 공동 진출하는 경우 타당성조사나 인프라 마스터플랜 수립 단계를 지원하거나, 시장개척자금 지원 시 가점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김재정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국장은 "건설사들이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 인프라 시장과 올해 출범한 AIIB 시장에서 새로운 모멘텀을 마련해나갈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금융기관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업 방식, 융복합 형태의 해외 건설사업 진출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