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해외건설 수주규모가 10년만에 가장 적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일감 감소는 앞으로 현재의 매출 규모나 고용 인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까지는 국내 주택 경기 호조로 해외 부진을 만회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것도 끝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올해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유가가 회복세를 보이고 경기 침체로 줄어든 인프라 투자도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배경이다. 수익성 좋은 '양질'의 수주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은 "글로벌 유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작년보다는 올해 수주 여건이 다소 나아질 것"이라면서도 "과거처럼 도급사업 위주로 접근하기보다는 금융 조달까지 함께 책임지는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수익성을 확보하면서 일감을 늘려나가는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제언했다.
◇ 2년 연속 30%대 감소
9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작년 국내 업체기업들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281억9231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재작년 461억4435만달러보다 38.9% 감소한 것으로, 10년 전인 2006년(164억6816만달러) 이후 가장 적은 규모다.
해외건설은 2010년 715억7881만달러의 사상 최대 수주액을 기록한 뒤 2012~2014년 3년 연속 600억달러대의 수주고를 올렸다. 하지만 재작년 30.1% 줄어든 뒤 2년 연속 30%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세계 건설시장에서 발주 물량 자체가 줄어든 게 가장 큰 배경이다. 여기에 우리 건설사들이 신중하게 수주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한 것도 물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2010년 안팎 경쟁적으로 수주한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이 불거지며 '어닝 쇼크'를 맞았던 게 배경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의 해외발 '어닝 쇼크'가 줄을 이은 2014년 이후 물량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 공격적 수주 기조는 사라졌다"며 "수익성을 담보한 사업 위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주 감소가 나타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아시아 비중 점점 커져
지역별로는 우리 건설사들이 '텃밭'으로 여기던 중동 중심에서 물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지역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 이어졌다.
작년 중동지역 건설 수주금액은 106억9369만달러로 전체 수주의 37.9%를 차지했다. 수주금액은 재작년보다 35.3% 감소한 것이다. 중동지역은 1960~1980년대 전체 해외수주의 80~90%를 차지했고, 2014년만해도 절반 가까운 수준(47.5%)으로 1위였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아시아에 밀렸다.
아시아 지역 수주는 작년 126억7549만달러로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2014년 24.1%에서 2015년 42.7%로 늘린 뒤 비중이 더 커졌다. 작년 수주금액은 재작년보다는 35.7% 감소했지만 분류 지역 가운데 비중은 가장 높았다.
아시아와 중동에 이어서는 중남미(16억1829만달러, 5.7%), 태평양·북미(13억7998만달러, 4.9%), 아프리카(12억2524만달러, 4.3%), 유럽(5억9965만달러, 2.1%) 순으로 작년 수주가 많았다.
국가별로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41억5928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이어 쿠웨이트(33억1839만달러), 싱가포르(27억8730만달러), 베트남(23억1530만달러) 순이었다.
◇ '발전소' 프로젝트 1위
해외에서 수주하는 프로젝트 종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여전히 주력인 산업설비(플랜트) 비중이 가장 크지만 60~70%를 차지하던 예전만큼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적었던 토목이나 건축 프로젝트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산업설비 작년 수주 규모는 132억4546억원으로 전년(264억9021만달러)의 절반으로 줄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47%로 재작년 57.4%에서 10%포인트 넘게 낮아졌다.
토목(64억4389만달러)과 건축(53억3030만달러)은 재작년보다 수주 규모가 각각 24.1%, 25.0%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전체에서의 비중은 높아졌다. 각각 22.9%, 18.9%로 전년보다 각각 4.5%포인트, 3.5%인트 상승했다.
세부 공종별로는 '발전소' 프로젝트가 39억6474만달러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가스시설'이 31억1847만달러였으며, '화학공장' 25억4462만달러, '철도공사' 24만1595만달러, '공장(일반)' 20억8675만달러 순이었다.
효자였던 '정유공장' 프로젝트는 공종 상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수주금액 10억달러 넘는 '대어급' 프로젝트가 많아 2014년과 2015년 각각 179억달러, 92억달러 등 가장 많은 수주고 안겼던 공종이다. 그러나 작년에는 단일 세부 공종 20위권 내에 들지 못했다.
◇ 삼성물산 3년만에 1위 탈환
기업들 가운데 해외건설 수주가 가장 많았던 곳은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 수주금액은 총 51억1184만달러로 전년보다 9.5% 감소했지만 다른 건설사들의 수주 감소폭이 더 컸던 탓에 1위에 올랐다. 삼성물산이 해외건설 수위에 오른 것은 136억3576달러를 혼자 수주했던 2013년 이후 3년만이다.
삼성물산은 작년 베트남 SDC 모듈3동(9870억원) 등 그룹 프로젝트를 비롯해 싱가포르 지하철 T313 및 법원(각 7090억원, 3730억원), 캐나다 사이트 C 댐공사(5460억원), 홍콩 공항 지반개량 공사(2780억원), 영국 티스 열병합발전(2490억원), 말레이시아 사푸라 빌딩(2340억원) 등을 따냈다.
이어 두산중공업이 34억2009만달러로 2위에 올랐으며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각각 29억7451만달러, 23억5753달러로 각각 3·4위에 올랐다. 그 뒤로는 GS건설 20억9519만달러, 포스코건설 19억3481만달러, 삼성엔지니어링 13억4880만달러 순이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쌍용건설이 9억5818만달러의 수주고를 올리며 8위에 오른 것이다. 이 건설사가 해외수주 10위권 내에 들어선 건 2001년(9위) 이후 15년만이다. 재작년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ICD)를 대주주를 맞으며 법원 기업회생절차에서 빠져나온 효과다.
이밖에도 대형건설사 중 대우건설 (7억8703만달러·9위), 대림산업(6억8270만달러·11위), 한화건설(4억7525만달러·14위), 롯데건설(2억7688만달러·17위), SK건설(2억1201만달러·18위) 등이 20위권 내 명단에 이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