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임대사업자에게 은행이 내주는 담보대출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임대수익 이자상환비율(RTI, Rent To Interest ratio)'이라는 새로운 잣대를 꺼내들었다. 임대료를 받아 이자를 얼마나 낼 수 있는지를 보는 지표다.
정부는 지난달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통해 내년 3월부터 상가 등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심사할 때 이를 참고하기로 했다. 은행권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운영한 뒤 규제 지표로 도입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부동산 가치가 그대로라 하더라도 임대수익이 줄거나 금리가 오르는 변수가 생기면 대출액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 공실 생기고 금리 오르면 '대출금 축소'
RTI는 연간 임대소득을 연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것이다. 사무용 건물이나, 상가 등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는 주택에 적용되는 가계대출 규제, 즉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은행권은 통상 이런 수익형 부동산의 경우 매매가격이나 분양가의 50~70%를 담보로 인정한다. 10억원짜리 상가라면 5억~7억원의 대출이 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RTI는 담보가치 외에 임대수익이 이자를 갚는데 얼마나 쓰이는지를 보겠다는 뜻이다. 부동산의 가치는 그대로라 하더라도 임대료로 받는 돈이 줄거나, 금리가 올라 대출 이자로 갚을 비용이 많아지면 대출 한도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금융위는 가계부채대책 발표 때 임대수익이 이자비용의 1.5배 정도를 감안한다고 언급했지만 아직 확정적이지는 않다. RTI가 더 높은 수위의 비율로 규제로 도입된다면 대출 가능액은 더 축소되고, 적용 대상도 넓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RTI가 1.5로 제한될 경우 보증금 1억원에 월세 300만원을 받는 약국에 세를 놓은 9억5000만원짜리 상가의 경우 현재는 5억원 이상 융자를 받을 수 있지만,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고, 월세가 50만원 깎일 경우 대출 한도가 5억원 아래로 줄어들 수 있다.
또 현재는 은행 대출시 임대사업자의 신용도나 시설물 등 다른 담보 등이 있을 경우 5~10%포인트 정도 정도 대출을 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담보대출 금액 가운데 '유효담보가액'을 넘어서는 부분은 분할상환을 유도하키로 했다. 적정 담보를 초과한 융자분은 상환토록 해 대출 의존도를 낮추도록 한다는 것이다.
◇ 임대업 등록하라더니 '다주택자 퇴로차단'
RTI의 등장 배경에는 자영업자인 부동산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대출이 있다. 장노년 은퇴 계층이 고정수입 확보를 위해 상가, 오피스텔, 사무실 등 '수익형 부동산'에 주목하면서 부동산 임대업자에 대한 대출이 늘었고, 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수익형 부동산 시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시장 규제가 강해진 뒤 최근까지도 유동성 유입이 늘어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제한을 덜 받는다는 인식이 커서다.
RTI 운영 기준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상가나 사무용 건물 등 수익형 부동산뿐 아니라 임대사업자가 보유해 운영하는 주택에도 RTI를 적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경우 현재 주택대출 규제와 중첩될 소지가 있고, 정부의 다주택자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 방침과도 배치된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다주택자는 LTV·DTI 규제 강화 영향을 받는다. 임대사업자에는 가계대출이 아닌 기업대출로 분류된 융자가 이뤄지는데, 이 경우 가계대출과 다른 담보인정비율이 적용되고 DTI는 아예 적용받지 않는다. 그런데 RTI라는 새 규제가 도입되는 셈이다.
정부는 다주택자가 납세 및 임대주택 안정 공급 등의 사회적 책임을 해야한다면서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은 임대사업자 등록을 늘리기 위한 추가 인센티브 마련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RTI가 규제로 도입되면 임대사업자를 등록할 유인도 줄어들 수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무등록 다주택자는 이번 가계부채대책을 통해 추가 대출이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상환 압력도 커진 측면이 있다"며 "그런데 사업자 대출로 전환할 때도 대출금애 제한을 받을 수 있다면 임대사업자 전환 유인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의 경우 상가 등과 달리 월세는 적고 보증금 비중이 큰 반전세나 전세 등이 많아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세금을 월세로 환산하는 것은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할 경우 이자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가정하고 이를 임대소득으로 보는 '간주임대료'가 있다. 다만 전세보증금의 60%에 정기예금 이자율을 곱해 산출하는 임대소득세 관련 기준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애매하다는 해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