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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돈 덜 되는 재건축·재개발 순항-돈 되면 답보

  • 2019.07.17(수) 10:12

홍은동 등 집값 변동률 적은 비강남권 정비사업 순항
은마, 잠실5단지 등 강남권은 반발수위 높여도 답보
주변 집값에 희비…"집값 안정 위해 불가피" vs "역차별"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주변 집값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모습이다.

집값 상승률이 비교적 안정적인 비강남권은 정비 사업 진행이 빠른 편인 반면, 이른바 '돈 되는 사업장'으로 불리는 강남이나 여의도에선 준공 연도가 오래된 아파트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일각에선 정비사업 인허가가 명확한 기준이나 잣대 없이 이뤄지고 있는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채신화 기자

◇ 집값 오를라…'강남‧여의도' 번번이 퇴짜

16일 업계에 따르면 강남‧여의도 등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사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1979년 세워진 이 아파트는 2003년 12월 조합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서울시의 인·허가를 받지 못해 16년째 답보 상태다.

은마아파트는 2017년 8월 지상 최고 49층 재건축을 계획했으나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이하 도계위)에서 이례적으로 미심의 조치를 받았다. 이후 주민투표를 거쳐 35층으로 계획을 수정한 뒤 다시 도계위에 자문을 신청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지금까지 도계위에 묶여 있다.

1977년 준공한 잠실주공5단지도 지난 2010년 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에 해당하는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조합에 따르면 2017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잠실5단지가 관광특구 지역에 위치한 만큼 국제설계공모로 설계업체를 선정하면 재건축 인허가를 간소화해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조합이 수억원을 들여 서울시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나 인허가는 여전히 미뤄지고 있다.

여의도에선 곧 준공 50년이 되는 시범아파트가 재건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단지도 지난 2017년 안전진단에서 D등급 판정을 받고, 지난해 6월 정비계획변경안이 도계위에 처음 상정됐다. 지난달엔 서울시 도계위 여야 시의원들이 단지 내 안전 위험 현장을 직접 보러 가기도 했으나 마찬가지로 재건축 인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들 단지의 정비 사업이 미뤄지는 이유는 한마디로 '집값' 때문이다.

재건축 '대장주'로 불리는 이들 단지가 재건축되면 일대 집값을 끌어올려 간신히 잠잠해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또다시 반등세로 돌아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이 34주 만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데도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다시 꿈틀대면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강남 재건축이 허가돼 진행되면 과거처럼 부동산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며 강남 아파트 재건축 규제를 당분간 완화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 우리는 사업 잘 되는데...

반면 서울 주요 지역을 제외한 사업장에선 정비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동대문구 용두6구역, 성북구 장위4구역, 서대문구 홍은13구역, 중랑구 면목4구역 등은 연내 분양을 앞두고 있다.

이들 단지는 조합설립추진일부터 관리처분인가까지 평균 약 9년 걸렸다. 용두6구역 재개발의 경우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승인되고 관리처분을 받기까지 5년밖에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면목4구역 재건축의 경우 통상 한 단지의 아파트를 새로 짓는 사업이 아닌 다세대주택 등 32개의 각각 다른 건물을 재건축하는 사업이지만 조합설립추진위가 승인된 이후 12년 만에 '9부 능선'인 관리처분인가를 넘었다.

중랑구 중화1구역 재개발도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조합설립이 추진된 지 9년 만인 지난 5월 관리처분변경인가를 받았고, 69개의 단독주택 등을 재건축하는 사업인 강북구 미아동 3-111번지도 9년 만에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최근 시공사를 선정하면서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에선 이들 단지가 위치한 지역의 집값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점이 정비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이유라고 보고 있다.

한국감정원 R-ONE 사이트 공시에 따르면 6월 기준 동대문구의 아파트 중위매매가격은 5억8000만원, 성북구는 5억3850만원, 서대문구는 6억1000만원, 중랑구는 4억8300만원으로 모두 서울 평균(7억7418만원)에 못미쳤다. 1년 전에 비하면 각각 25.3%, 15.6%, 19.3%, 38% 올라 상승세는 서울 전체 평균 상승률(16.2%)보다 대부분 높지만 가격 자체로는 아직까지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돈 안 되는 지역의 정비 사업은 잘만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집값 안정을 목표로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집값을 자극한다는 이유만으로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 점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가 집값이 비싼 지역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돈 안 되는(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지역에선 정비 사업이 순탄히 진행되고 있다"며 "사실상 준공연도로 따지면 더 시급한 쪽이 비싸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집값 상승으로 인해 오래된 강남 아파트를 재건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역차별이자 과도한 행정력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이들 단지가 얼마 오르느냐에 따라 지역 시세가 따라가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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