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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 (주택)청약씨]0순위 청약통장 찾아라

  • 2021.02.18(목) 14:14

1977년 첫 도입…개발 붐에 투기수단으로 악용되기도
무주택자 중심 제도 개편에도 여전히 높은 당첨의 벽

서민들의 유일한 내 집 마련 수단이 돼버린 주택 청약제도. 그 순기능에도 당첨 문은 점점 좁아지면서 세대갈등과 역차별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제도가 나온지 45년이 흐르면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택 청약제도가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짚어본다.[편집자]

어느 덧 40대 중반에 접어든 (주택)청약씨. 요즘 들어 그의 얼굴에 수심이 더 깊어졌다. 그 동안 모진 눈초리에 대대적인 수술도 여러차례. 이제는 그도 버티기 힘들어 보인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되기도, 청약복권이 되기도 하면서 사나운 눈초리를 겪어야 했다. 또다시 로또청약이다 현금부자들의 잔치다 바늘구멍이다하며 욕을 먹기 일쑤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1977년 3월, 여의도 목화아파트 분양 공개추첨 현장에 4000여명(청약신청자 약1만4000명)의 인파가 몰렸다. 투기꾼 1명이 100가구를 신청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제조업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이 5만원 이하였던 시절에 이 아파트는 당첨만 되면 분양권 프리미엄이 150만~250만원에 달했다. 주택이 부족했던 것은 물론 투기 바람이 불었고, 전매제한 등도 없어 입주 전까지 손바뀜이 4~5번은 기본이었다. 말 그대로 프리미엄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청약씨가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1977년 8월18일, '국민주택 우선공급에 관한 규칙' 신설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서울은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매년 30만명 가량 늘면서 주택 부족에 시달렸다. 주택 보급을 늘리려면 민간자본을 주택건설 자금으로 끌어들여야 했는데, 이를 위해 청약관련 저축을 활용했다. 무주택 국민들이 청약에 가입해 돈을 저축하면 이 돈을 활용해 공공주택 건설을 지원하는 것이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중(유튜브 화면 캡쳐)

특히 다수가 청약제도에 가입하도록 '추첨제' 방식을 도입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어야 가입자가 많아지고 이는 건설재원 증가로 이어진다. 그래야 분양시장도 활발해지고 주택건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약제도가 생겼지만 아파트 시장에서 투기 붐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공급 우선순위를 주기 위한 청약 1순위 제도를 도입하고 전매제한 등도 실시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역설적으로 당첨 우선순위는 투기수요를 더 자극하기도 했다. 지금은 생소한 '0순위 청약통장'이 대표적이다. 민영아파트 청약예금 가입자 중 6회 이상 떨어진 사람에게 우선당첨권을 줬는데, 이게 0순위 청약통장이다. 투기세력이 0순위 통장을 가만둘 리 없었다. 0순위 청약통장이 불법으로 거래되는 등 투기세력에 악용되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세력이 활개치던 시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탄생한 청약씨는 오히려 투기세력들의 먹잇감이 됐다.

그렇다고 청약씨 머릿속에 안좋았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주거사다리 역할을 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1990년대 초, 단독주택 내 문간방에 세들어 살던 한 30대 중반 직장인이 있었다. 그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문간방을 벗어나 내 집 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임대주택 입주 신청을 했지만 아쉽게 떨어졌다. 그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주택공사(주공, 현 LH)가 짓는 공공분양 아파트에 청약을 넣어 운 좋게 당첨됐다. 그렇게 청약으로 생애 첫 집, 새 아파트를 마련했다. 이렇게 장만한 새 아파트는 가족이 살아가는데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돼 줬다.

청약씨로 인해 내 집 마련에 성공하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삶을 누리게 됐으니 이만하면 주거 사다리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해줄 만도 하다.

요새들어선 당첨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몰려들며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로또 청약' '현금부자들의 잔치'라는 비판 또한 거세다. 

청약씨의 고민은 커졌다. 가점제 시행으로 무주택자 중심의 시장이 형성됐고, 젊은 층을 위한 특별공급도 늘어났지만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지만 무주택자들은 여전히 많고, 이들을 도와야 할 청약씨는 힘을 못쓰고 있다.

과거에는 투기 수요에 치여서, 지금은 너무 높은 당첨의 벽에 청약씨를 바라보는 무주택자들의 눈은 차갑기만 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도울 수 있을까'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 청약씨의 고민은 45년이 지나서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에 따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누더기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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