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계획 수립과 토지보상을 병행 추진해 사업기간을 단축하겠습니다"(2020년 국토교통부 5·6대책 발표중)
정부가 지난해 3기 신도시 사전청약 계획을 발표하면서 약속한 내용이다. 과거 보금자리주택이 토지보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청약에 들어가 본청약, 입주 등이 미뤄졌던 사례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번에도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정부는 이달부터 사전청약을 시작해 오는 2023년 착공, 2025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토지보상 문제로 삐걱대고 있다. 특히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지구에서 주민 반발이 심한 만큼 또다시 '사전청약 희망고문'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평당 분양가 2000만원…보상비는 120만원?
국토교통부는 오는 16일 인천 계양 등 3기 신도시를 포함한 공공택지지구의 사전청약을 시작한다.
시장에선 수도권의 치솟는 집값, 부족한 공급 물량에 허덕이던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그러나 애초 정부가 장담한 것과 달리 토지보상이 난항을 겪자 당첨이 돼도 입주까지 시간이 오래 소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사전청약을 받는 3기 신도시 7곳 중 보상 절차가 실시 중인 곳은 인천 계양(1100가구), 하남교산(11월·1000가구) 등 두 곳 뿐이다. 남양주 왕숙1(12월·2300가구), 고양 창릉(12월·1700가구), 부천 대장(12월·1900가구) 등 4곳은 토지보상 계획만 공고된 상태이고 안산 장상(12월·1000가구)은 아직 보상 공고도 나지 않았다.
세금, 보상비 등에 불만을 가진 토지주들이 토지 수용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특히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에서 반발이 심하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남양주 왕숙은 3기 신도시 중 택지 규모가 가장 크고 하남 교산은 3기 신도시 선호도 조사에서 1위(LH 청약일정 알리미 서비스 조사)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남양주 왕숙은 감정평가를 두고 LH와 주민들이 대립하고, 하남 교산은 주민 반발로 지장물 조사를 시작도 못했다. 김현준 LH 신임 사장이 이달 초 이들 지역을 방문해 상황을 점검하긴 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다.
공대석 왕숙지구 진접주민대책위원장은 "진접2지구 예상 분양가가 3.3㎡(1평)당 2000만원으로 책정됐는데 토지주들은 평당 120만원(대부분 비닐하우스 토지주)을 보상받는다"며 "평가사들도 어림없는 금액이라고 보고 주민들한테 개발이익을 더 돌려줘야 한다고 말할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LH는 올해 3기 신도시 토지보상비를 9조1054억원으로 집계했으나 시장에선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등 정부와 시장이 생각하는 현금 보상 금액의 간극이 크다.
공 위원장은 "8월부터는 토지평가를 시작하기로 한 상태인데 LH 사장은 주민 재정착을 지원하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을뿐 구체적인 대안은 없었다"며 갑갑함을 토로했다.
토지보상 넘었더니 지장물보상…"2025년 입주 어려워"
하남 교산의 경우 토지보상률은 80%를 넘었으나 지장물 조사·보상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신태수 지존 대표는 "하남교산은 지장물이 가장 많은 사업지구"라며 "지장물 조사 자체도 오래 걸리고 이 과정에서 협조가 필요한데 주민 반발로 아직 조사 일정도 안 나온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주민 입장에선 토지보상을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지장물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듯 하다"며 "토지보상률이 아무리 높아도 지장물이 철거 안 되면 착공이 요원해지는데 착공 일정부터 논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토지주 입장에선 양도세도 부담이다. 정부가 예상보다 적은 보상금을 주고 땅을 가져가는데 토지주는 양도세까지 내야 한다. 양도세율은 양도 차익에 따라 6~45%가 적용된다.
이같은 이유로 토지수용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버티기에 들어가면 정부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LH가 수용재결(재판으로 결정)을 진행한다고 해도 토지주들이 행정소송을 청구할 수 있고 철거·이주 과정에서도 갈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 외부 변수에 따라 3기 신도시 주택 공급에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만약 정부의 계획대로 본청약, 착공 등이 어려워지면 사전청약자들은 과거 보금자리주택 공급 때처럼 기약 없이 기다리며 '희망고문'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태수 대표는 "토지보상 진행률이 높다고 해도 지장물 조사, 보상 등이 남아있기 때문에 거기서 버티면 시간이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면서 "정부의 2025년 입주 계획은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이고 토지보상 문제가 정부의 청사진을 가로막는 복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