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 된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던 강남권 재건축 사업에 드디어 길이 열리는 분위기입니다. 특화설계를 이유로 발목 잡혔던 잠실미성·크로바 아파트가 1년8개월만에 서울시 건축심의 문턱을 넘었거든요.
시장에선 미성·크로바를 재건축 업계의 '네잎크로바'로 여기는듯 합니다. 미성·크로바를 시작으로 특화설계와 재건축활성화 모두 볕이 들면서 '오세훈표 스피드 주택공급'이 가시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거든요. 과연 그럴까요?
잠실에도 '스카이브릿지' 생긴다
서울시는 이달 송파구 신천동 잠실미성·크로바아파트 재건축사업의 건축계획을 통과시켰습니다. 미성·크로바 재건축조합이 지난 2019년 건축설계안을 제출한 지 1년8개월만인데요.
특화설계안이 일부 수용됐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미성·크로바는 지난 2017년 시공사 선정을 할 때만 해도 롯데건설이 '국내 최고의 랜드마크 단지' 건설을 약속하며 각종 특화설계를 계획했었는데요. 3개 동의 최상층을 연결하는 스카이브릿지 3개, 타워 측면에 LED 조명을 설치해 영상을 보여주는 미디어파사드, 전면 커튼월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같은 특화설계로 고급화를 한다고 하니 당시 인근 주민들에게 부러움을 샀었는데요. 하지만 서울시가 인허가권을 무기로 설계 변경을 요구하면서 미성·크로바 조합원들조차 '그림에 떡'이 됐습니다.
서울시는 미성·크로바가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돼 용적률 등 건축규제를 일부 완화받은 만큼 주변 환경과의 조화 및 공공성을 고려한 설계를 해야한다며 특화설계 배제를 요구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특화설계가 위화감을 조성하고 분양가를 올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러나 당시 시장에선 현 정부 들어 집값이 크게 오르자 집값을 자극할만한 고급화 전략을 제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앞서 서울시는 2019년에 대안설계를 공사비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등 재건축 단지에 제동을 걸어왔거든요. ☞관련기사: 랜드마크 대신 '밋밋한 아파트'만 짓는다(1월21일)
결국 미성·크로바는 2019년 5월 설계변경안을 제출했으나 서울시와의 협의 끝에 같은 해 12월 특화설계안이 쏙 빠진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로 방향을 틀게 됐는데요. 그러자 조합원들이 반발하며 조합 집행부가 해임되고 설계를 재검토하게 되면서 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선 2019년 상반기에 이주를 마쳤는데 건축 심의 때문에 발목이 잡힌 셈이니 애가 탈 수밖에요.
그러다 1년8개월 만에 스카이브릿지 1개, 커튼월 등 일부 특화설계안이 수용되면서 조합원들의 묵은 체증이 내려가게 됐는데요.
아무래도 오세훈 서울시장의 영향인듯 합니다. 서울에서 스카이브릿지가 처음 설치된 아파트는 용산구 이촌동 '래미안 첼리투스'인데요. 오 시장 첫 임기 중 재건축됐거든요. 업계에선 이번 미성·크로바의 건축심의 통과를 시작으로 다른 주요 재건축 단지들도 특화설계를 통한 고급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세훈표 주택공급' 스피드업?
시장에선 이번 결정을 특화설계뿐만 아니라 '재건축 활성화'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4월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감이 나왔는데요. 오 시장은 주거정비지수제 폐지 등 재개발 규제 완화에는 적극적으로 나선 반면, 집값을 자극할 우려가 큰 재건축 사업에 대해선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던 오 시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강남권에서 대단지 재거축 사업을 승인하자 기대감이 나올 수 밖에요.
서울시는 미성‧크로바뿐만 아니라 서초 방배 신동아파트에 대해서도 건축 심의를 통과시켰고요. 잠실주공5단지의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도 마무리하면서 한동안 꼬였던 실타래를 푸는 등 재건축 사업에 있어 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기 시작했는데요.
오 시장이 후보시절 내세웠던 '스피드 주택공급'에도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안전진단 규제 등으로 재건축 사업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고 오세훈 시장도 속도조절하고 있던 시점에 이번 건축심의 통과는 재건축 완화 또는 활성화에 어느 정도 시그널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재건축 이주 수요가 몰려 있어 전세시장이 불안한 데다 개발 기대감까지 반영되면 집값이 더 치솟을 수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재건축 활성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금까지 한 동 남기기(개포주공1단지), 굴뚝 남기기(잠실주공5단지) 등 원형 보존을 위한 재건축 제재가 과도했고 집값 상승 등을 막기 위한 안 보이는 규제가 많았다"며 "이번 건축심의 통과는 '기조의 변화'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건축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당분간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조금씩 규제를 풀어주는 식으로 가게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