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혔던 대출 문이 반짝 열리면서 예비 입주자들이 한숨 돌리고 있다. 하지만 내년엔 올해보다 더한 '대출 보릿고개'가 예상돼 마음을 놓기 힘든 상황이다.
은행 등 1금융권의 대출이 막히면 결국 2금융권 등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이 경우 잔금을 치른다고 해도 금리 인상, 중장기 부동산 가격 하락 등에 따른 부담을 떠안아야 할 판이라 예비 입주자 및 주택 수요자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내 집 마련' 고지를 앞두고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도 우려되고 있다. 자칫 전월세 수요가 늘면서 전세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의 월세화도 가속화할 수 있다.
잠깐 풀었다가 더 조인다…예비입주자들 '발동동'
최근 시중은행들이 다시 대출 문을 조금씩 열면서 예비 입주자들도 숨통을 트이기 시작했다.
통상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계약금, 중도금, 잔금' 순의 납부 과정에서 중도금대출과 잔금대출을 이용하는데 이중 잔금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의 성격을 갖고 있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계산에 포함된다.
정부가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올해는 잔금대출에 DSR 40% 한도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 은행들은 잔금대출에도 문턱을 높여나갔다. 잔금대출은 아파트 등기가 나오기 전 시공사·시행사 연대보증이나 후취담보 등을 통해 실시되는데 은행과 협약해서 진행된다. 그동안 우량자산(아파트)을 담보로 대출이 나오는 만큼 은행들의 적극적인 대출 지원을 받았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가계부채 관리 등에 따라 갈수록 대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다행히 연말에 대출이 반짝 풀렸다. 금융당국이 4분기 전세자금대출을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대출 증가율 관리에 여유가 생기자 은행들이 조금씩 대출 문턱을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KB국민은행은 잔금대출의 담보 기준으로 'KB시세'와 '감정가액'을 순차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 은행은 지난 9월29일부터 '분양가격, KB시세, 감정가액' 중 최저금액을 잔금대출 담보 기준으로 설정해 한도를 대폭 축소한 바 있다.
그러나 수요자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내년엔 대출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년 1월부터 입주자모집공고를 내는 분양 단지부터 잔금대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현재 9억원을 넘는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이 안 나오는데, 내년부터는 잔금 대출이 개인별 DSR에 포함되기 때문에 분양 계약자가 대출이 있는 경우 잔금 마련이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잔금대출을 확보하지 못해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입주경기실사지수(HOSI) 자료에 따르면 10월 미입주 사례 중 34.1%가 '잔금대출 미확보' 때문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월(26.7%) 대비 7.4%포인트 늘어난 수치로 미입주자 10명 중 3명은 잔금 대출을 받지 못해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셈이다. '잔금 대출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응답 비율은 지난 2019년 12월 18.8%, 2020년 12월 24.2%, 올해 6월 28.8%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영끌하거나 포기하거나…"양극화 심화할것"
시장에선 잔금대출의 문턱이 높아질수록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환경'이 팍팍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은행에서 잔금대출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예비 입주자의 경우 마음이 급해 저축은행, 카드론 등 2금융권에서 '영끌'해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갈수록 오르는 대출 금리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은 25일 기준금리를 0.75%에서 1.0%로 0.25%포인트 올린데 이어 내년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향후 집값이 떨어질 경우도 문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앞으로 민간·공공주택 입주물량이 늘어나면서 가격 조정이 올 수 있는데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경우 부담이 클 것"이라며 "금리 인상, 집값 하락으로 대출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고 마이너스피로 분양 아파트를 파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그래도 분양가 아파트는 상한제를 적용받아 시세보다는 저렴하겠지만 고가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경우엔 그 지역에 입주가 많아지거나 시장의 변곡점이 와서 가격 조정이 생기면 대출금 상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끌'해도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도 우려된다. 이 경우 전월세로 돌리고 그 보증금으로 본인이 거주할 새 전월세 주택을 구해야 하는데, 결국 전월세 수요가 늘면서 임대차 시장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뜩이나 종부세 인상, 임대차3법 등으로 전셋값이 치솟은 상태라 '전세의 월세화'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0월은 108.3으로 전월(119.8)보다 11.5포인트 내린 반면 월세수급지수는 9월 110.0에서 10월 110.6으로 소폭 올랐다. 수급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수요보다 공급이 많음'을, '200'에 가까울수록 '공급보다 수요가 많음'을 의미한다.
김인만 소장은 "3기 신도시 등 청약 대기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입주를 포기한 이들까지 전월세를 찾아 나서게 되면 임대차시장이 더 불안해질 것"이라며 "여기에 임대차3법, 종부세 인상 등이 맞물리면서 전월세 보증금이 더 오를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나아가 주택시장 양극화 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강남은 자금력 갖춘 사람들 위주로 움직이는 반면 비강남권은 현금 동원력이 빠듯한 사람들도 많다"며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지역은 가격이 계속 강세일테고 그 반대는 조정되는 식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