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기분이다. 계약갱신청구권(2+2년)이 만료된 이후 들여다 본 임대차 시장은 암담했다. 전셋값도, 대출 문턱도 지난해보다 더 높아졌다. 올해는 자녀 출산을 앞두고 아파트를 사고 싶었는데 '내 집 마련' 꿈은 한층 더 멀어진 느낌이다 .
가장 난감한 건 새로운 전세대출 방식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기 위해 전세대출에도 '분할상환' 적용을 권장하면서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분할상환 전세대출 상품을 유도하고 나섰다.
전세대출은 대표적인 서민 금융 상품으로 전세보증금의 최고 80%까지 대출해주고 전세 계약 종료일에 일시 상환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출자는 전세로 사는 동안 매월 대출금에 대한 이자만 납부하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거비 부담이 적었다.
그러나 당국이 2021년 하반기 가계부채 관리대책 중 하나로 전세대출 분할상환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당국은 2년간 원금의 5% 이상만 분할상환하면 해당 전세대출 잔액을 분할상환대출로 인정하고, 분할상환 비중이 높은 은행에 정책모기지 상품을 우선적으로 나눠주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당국은 인센티브를 '제시'했고 차주는 대출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했지만 대다수의 은행들이 분할상환 상품 위주로 취급하면서 차주의 선택권이 대폭 좁아진 셈이다.
물론 전세대출 일시상환 상품도 취급한다. 회사 동료는 은행 지점 10군데를 돌아 겨우 일시상환 전세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점심시간마다 은행 지점을 돌아다니며 일시상환 전세대출 실행 여부를 묻고 있지만 이미 소진됐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렇다고 분할상환을 하기엔 매월 주거비 부담이 너무 커진다.
이미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오를대로 올라 대출 이자만 갚기도 쉽지 않다. 전세보증금 6억원짜리 아파트에 대해 약 70%인 4억원을 연 3.5% 금리로 4년간(계약갱신청구권 사용)전세대출을 받는다고 가정해보면, 단순계산 시 일시상환 상품은 월평균 약 116만6000원을 이자로 내야 한다.
그러나 대출금 5%(2000만원)를 분할상환할 경우 월평균 상환액(원금+이자)은 약 155만5000원으로 월 주거비 부담이 38만9000원가량 뛴다. 물론 상환한 원금 2000만원은 전세 계약 만료 시 돌려받게 되는 돈이라 이자 비용만 따지면 일시상환 상품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당장 쓰는 가처분소득이 확 줄어들기 때문에 체감 부담감은 혹한기 느낌이다.
여기서 돈을 조금 더 보태면 서울 주요 지역의 아파트 월세로 살 수 있을 정도다. 전월세 전환율 3.14%(KB부동산 통계 2021년10월 서울 기준), 임대료 인상률 5%를 적용해 6억원짜리 전세를 월세로 전환(무보증금)할 경우를 단순 계산하면 월 임대료는 약 164만8000원으로 추산된다.
월세보증금을 일부 적용한다면 다달이 내야 하는 월세금은 더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전세난'으로 인해 월세 전환 매물이 많아지면서 월셋값도 상승하는 추세라 월세 구하기도 살떨린다.
이 모든 게 전셋값이 너무 올라 벌어진 상황이다. 2020년 8월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전세난이 심화한 가운데, 2021년 10월 가계부채 대책에 따라 대출 규제까지 강화하자 '전세 종말' 수준까지 접어들었다. ▷관련기사: [집잇슈]만약 전세가 사라진다면?(10월2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1년 가계부채 대책 발표 이전인 1~9월까지만 봐도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량은 총 8만5872건으로 전년 동기(10만2935건) 대비 16.5%(1만7063건) 감소했다. 반면 월세, 반전세 등 월세가 조금이라도 낀 매물의 거래량은 총 4만9061건으로 전년 동기(4만2420건)보다 15.6%(6641건)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 '월세 시대'로의 진입을 외치는듯 하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해지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산정에 전세대출도 포함할 수 있다고 당국이 예고한 바 있어 조바심이 난다.
정부가 각종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서민·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하던데 왜 나같은 무주택자는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지……. 내일도 점심을 굶고 은행에 전세대출을 알아보려 다녀야겠다. ▷관련기사: 대출규제, 부동산시장 '소용돌이'…'전세' 더 자극할라(10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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