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대접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2020년 8월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집주인들이 '두 발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에 나서면서 한동안 전세 매물이 귀했었는데요.
이제 집주인도 세입자도 전세보다 월세로 눈을 돌리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고 있습니다. 집주인은 임대차법, 종부세 부담 등으로 월세가 유리해지고 세입자는 높은 대출문턱, 대출금리 부담 등에 '차라리 월세'로 노선을 변경하는 모습인데요.
이밖에도 '전세의 월세화'를 부추길만한 요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조만간 전세의 시대가 막을 내릴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냥 월세 할게요'…금리 앞에 장사없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1년 연간 월세 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7만1080건으로 지난 2011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서울에서 월세 낀 아파트 거래량은 △2014년 4만2028건 △2015년 5만3618건 △2016년 5만4002건 △2017년 5만797건 △2018년 4만8368건 △2019년 5만1026건 등으로 4~5만건대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2020년(6만783건) 6만건, 2021년 7만건을 넘어서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종합부동산세가 크게 오른 가운데 지난 2020년 하반기부터 새 임대차보호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되자 부담을 느낀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로 매물을 돌린 영향도 있고요.
세입자 입장에선 대출 규제 강화로 전세대출마저 문턱이 높아지고 기준금리가 이례적으로 두 차례 연달아 인상되는 등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자 전셋값 마련이 어려워져 월세로 눈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금리 인상이 '전세의 월세화'를 강하게 부추겼는데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1월 0.75%→1.0%, 1월 1.0%→1.25% 올리면서 최근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최고 5%를 넘어섰는데요.
그러자 전세대출 이자가 월세보다 비싸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전세보다 반전세, 월세를 택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전환율은 4.1%인데요. 전월세전환율은 전세 보증금을 월 임대료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월세 전환에 따른 부담이 크다는 뜻입니다. 세입자로서는 전세대출금리가 이보다 높으면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내는 게 유리한 셈이죠.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거래 중 월세 비중은 △2017년 32.3% △2018년 28.7% △2019년 28.1% △2020년 31.1% △2021년 37.4% 등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월세가격 널뛰면 다시 전세로?
시장에선 이러다 '전세 제도'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할만한 요인이 더 남아있거든요.
오는 8월 계약갱신청구권 만료 매물이 나올텐데요. 이때 신규계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셋값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월세 시장으로 대거 유입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추가 금리인상이 단행될 경우 이같은 상황은 더 두드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함께 한국은행도 연내 기준금리를 몇 차례 더 올릴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과거에도 월세와 전세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전세우위시장으로 돌아왔던 만큼, 완전한 전세의 종말이 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15년엔 '1%대 저금리시대'에 진입하면서 예금 금리가 낮아지자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 대신 매달 월세로 받는 걸 선호, 월세 매물이 늘었었는데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2월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전세라는 것은 하나의 옛날의 추억이 될 것"이라며 월세시대의 시작을 선언할 정도였죠.
서울 아파트 임대차거래 중 월세 비중도 2014년 25.3%에서 2015년 34.1%, 2016년 34.6%으로 급등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하반기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늘어나고 '갭투자'가 시장의 전세공급원 역할을 하면서 다시 전세 우위시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현 시점에서도 월세시장 과열이 심해지거나 규제 완화 등이 있을 경우 다시 전세 수요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새 임대차법 시행 등으로 임차인우위시장이 형성되고 대출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월세 가격이 과하게 오르고 있다"며 "월세가격 상승률이 전세대출 이자 부담보다 커지는 순간이 오면 다시 전세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는 평균 124만5000원으로 1년 만에 11만8000원(10.5%) 올랐고요. 강남권 등 수요가 높은 지역에선 월세도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99㎡가 보증금 2억원, 월세 510만원에 임대차계약이 체결됐는데요. 불과 4개월 전만 하더라도 같은 보증금에 월세 420만원으로 거래가 체결됐던 것에 비해 21.4%(90만원) 올랐습니다.
윤수민 위원은 "전세제도가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인데다 전세의 월세화 요인들이 쌓이다보면 계속해서 전세가 우위에 있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세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이고 금리, 대출규제 등에 따라 다시 수요가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제도 자체가 없어지긴 힘들어보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