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이 내후년(2024년)으로 밀리면서 지역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했던 부동산 공약 중 하나인 만큼 조속한 추진이 기대됐으나 자꾸 미뤄지며 '희망 고문'이 되고 있거든요.
정부가 뒤늦게 해명하고 나섰지만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마스터플랜이 내년에 완성될지도 의문이고요. 지역 특혜 논란, 이주 문제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아 입주까지 세월아 네월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정부가 과연 1기 신도시 재정비에 속도를 낼 수 있을까요?
미뤄진 1기 신도시 재정비…"희망고문 당했다"
1기 신도시는 지난 1989년 부동산 집값을 안정화하고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근교에 건설한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등 5개 도시입니다.
당시 자연 녹지에 도시를 건설한 만큼 발표 4년만인 1993년 입주를 완료해 총 29만2500가구의 대단위 주거타운을 조성할 수 있었는데요.
이들 5곳 모두 1991~1993년 입주를 시작해 지난해부터 재건축 연한인 '준공 30년'을 채운 단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1기 신도시 단지의 용적률이 대부분 200% 내외라 현재의 재건축 제도 하에선 사업성이 낮다는 게 걸림돌로 작용했는데요.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1기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을 만들어 이같은 문제를 해소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습니다.
준공 30년 이상 아파트의 안전진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역세권 등에는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여 10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구상이었는데요. 이는 취임 후 '11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했습니다.
지난 5월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마스터플랜을 통해 종합 발전 계획을 구상할 것"이라고 밝혔고요. 시장에선 윤 정부 첫 부동산 공급 대책인 '8·16대책'에 이같은 내용이 담길 것이란 기대가 높았는데요.
그러나 대책엔 2024년까지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중장기 개발 계획(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에 지역민들은 이른바 '희망 고문'을 당했다며 단체 집회를 계획하는 등 반발의 수위를 높여가는 분위기인데요.
정부는 일단 '수습'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19일 브리핑을 열고 "신도시 같은 도시 재창소 주순의 마스터플랜은 5년 이상 걸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마스터플랜 수립에 1년6개월 정도 소요되는 건 물리적으로 가장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라고 해명했고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1기신도시를 명품 신도시로 탄생시킬 기반을 확실히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오후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은 예전에 5년 걸릴 사안을 최대한 단축시킨 건데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고 언급했고요.
이러다 '제2의 은마아파트' 될라
정부나 부처의 해명 내용을 보면 '이 정도면 빠르다' 정도로 이해가 되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우선 정부가 말한 마스터플랜도 '2024년 완성'이 아니라 '2024년 수립 추진' 이고요. 지금 추진 중인 내용으로 마스터플랜이 완성된다고 해도 그 시점의 집값 등 부동산 시장에 따른 수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두성규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4년이면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곳곳에서 주택 공급이 가시화하는 시점이라 오히려 과잉 공급의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며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을 올려 가구수를 늘리게끔 그대로 추진할지 모르겠다"고 내다봤습니다.
아울러 "지금도 주택 시장은 분양가 상한제,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금리 인상, 대출 규제 등으로 미분양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향후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을 높인다고 해도 일반분양이 잘 돼서 조합들이 원하는 만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덧붙였습니다.
더군다나 재건축은 개별 소유자가 있기 때문에 사업 과정에서 이해 관계 충돌이 불가피한데요. 재정비 계획이 마련돼도 입주까지 15~20년은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대규모 주택 공급을 가장 빨리 하는 방법이 신도시인데, 신도시를 조성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10년 가까이 걸린다"며 "여러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재건축은 입주까지 20년은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역 형평성' 논란도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의 걸림돌이 될듯 합니다.
서울에서는 준공 50년 전후의 노후 아파트도 집값 상승 등의 문제로 재건축 추진이 안 되는 상황에서 1기 신도시만 따로 규제 완화 등을 적용하는 건 '특혜'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재건축 사업이 답보 상태인 서울 노후 아파트는 △여의도 시범아파트(준공 1971년)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준공 1978년) △강남구 은마아파트(준공 1979년) 등으로 지어진 지 45~50년 안팎인데요. 이에 비해 1기 신도시 단지들은 이제 막 준공연한을 채운 수준이라 주거 환경을 봤을 때 상대적으로 재건축이 시급한 수준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하지만 오래 걸리는 사업인 만큼 건물 노후화, 이주 수요에 따른 매매·전세시장 불안 등을 막으려면 일찍부터 정교한 계획을 세워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인만 소장은 "지금은 1기 신도시 단지들이 재건축할만큼 노후화되지 않았지만 정비사업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지역 형평성 등을 고려해 정비사업 전반적으로 인허가 절차를 단순화해주고 용적률 인센티브 정도만 준 뒤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