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이재명vs집값]①2017년 기시감…"규제 없다" 안도감에 '불장'(6월12일)
[이재명vs집값]②'번지는 불' 방관할 수준 넘었다(6월13일)
"그동안 풀고 싶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기름을 붓는 역기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과감히 풀지 못했다. 부동산 가격이 지난 2~3개월 정도 하향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견해다. 상당히 적극적으로 토허제(토지거래허가제)를 해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1월14일 '규제 풀어 민생 살리기 대토론회' 중)
서울 집값은 작년 하반기만 해도 주춤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급등하고 있다. 불쏘시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재지정 '번복 소동'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조기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던 지난 2월12일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 305곳 중 291곳의 토허구역 지정을 해제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취지였다.

시작은 '오쏘공' 토허구역
하지만 해제 직후 서울 아파트값은 해제지를 중심으로 급격히 뛰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매매가격 조사 기준으로 해제 직전인 2월10일 0.02% 상승 수준에서 해제 직후(2월17일) 0.06%로 보폭을 키운 게 시작이었다. 이어 2월24일 0.11%→3월3일 0.14%→3월10일 0.20%→3월17일 0.25%로 매주 상승폭이 커졌다.
결국 정부와 서울시는 해제한 지 35일 만인 3월19일 기존 지정단지를 다시 토허구역으로 재지정하는 걸 넘어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 아파트까지 확대해 묶겠다고 발표했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지펴진 상승 불길이 주변지역으로 번져나가며 주택시장 불안을 키웠기 때문이다.
특히 확대 재지정 후 실제 시행(3월24일)까지 5일 동안에는 막판 수요가 몰리며 강남구 거래건 10건 가운데 4건이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재지정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 달 남짓 만에 정책을 뒤바꾼 것을 두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독점·투기 등 시장 왜곡 시 정부 개입이 필요해 대응에 나선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당시 여권 대선 후보로 나설 여지도 이를 기점으로 확 좁아졌다.
▷관련기사: [기자수첩]'오쏘공'이 낳은 혼란…전화위복이라니(3월21일)
그러나 정부가 스스로 정책 신뢰도에 먹칠을 하면서까지 재지정한 토허구역은 현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해제 후 수일만에 수억원 가량 집값이 뛰는 상승여력을 확인한 시장 수요는 재지정 후에도 현재까지 강하게 지속되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전용 84㎡는 지난 4월18일 35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썼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지난달 전용 76㎡가 33억50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4월 31억원대에 거래된 것과 비교해 2억원가량 오른 금액이다.
'정부의 토허구역 지정=집값 상승 유망지역 공인'라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다. 새 정부 들어 강남3구를 비롯해 마포, 강동, 성동 등 주변지역에서 가격 급등 행렬이 이어지는 것도 풍선효과뿐 아니라 규제지역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을 가진 수요가 있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앞서 마포, 성동, 강동 등 토허구역 주변지역의 풍선효과가 나타날 경우 추가적인 지정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집값이 오르고 있는 만큼 이재명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에는 토허구역 확대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슬그머니 약해진 '토허구역'
그러나 토허구역 해제와 확대·재지정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규제 강도가 약해진 것도 지금과 같은 급등 상황을 부추겼다.
토허구역이 갑작스레 늘어나며 관할 지자체에 혼란이 빚어지자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나서 지난 4월 공통 지침을 마련했다. 본래 토허구역 내 주택을 취득 시에는 2년 간 실거주 해야하며, 전세를 끼고 사는 이른바 '갭투자'도 불가했다. 또한 기존 주택은 구청별로 주어진 기간(4개월~1년) 내 처분(양도)해야 했다.
하지만 규제를 정비하면서 기존주택 처분 기한을 6개월로 통일하는 대신 기존주택 임대가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줬다. 종전에는 기존주택을 매각하지 않고 임대하면 거의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토허구역 구입시 1주택 여건이 사실상 완화된 것이다. 일시적 2주택 요건을 충족해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존주택 처분 기한도 3년까지 확보된 것이다.
이렇게 토허제 규제 강도가 종전보다 약해지면서 상급지 고가 주택으로 이동하려는 '갈아타기 수요'를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더욱이 해제된 사이 거래한 경우 실거주 등 토허구역 의무를 전혀 받지 않는다. 재지정 후 바로 거래도 가능한 것이다. 잠실·삼성·대치·청담 일대 아파트 291개 단지가 이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당장은 토허구역이나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확대 등 규제지역 지정을 첫 정책으로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현재의 시장 급등은 토허구역 확대 가능성과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 심리와 기대, 7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 시행전 대출 수요 등이 몰리며 매우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첫 부동산 대책으로 강한 규제나 수요 억제책을 쓰지 않는 대신 토허구역이나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토허구역 지정이 제 기능을 잃고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데다, 규제 강도까지 약해진 상황에서 이를 통해 향후 시장 안정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규제지역을 추가로 지정하더라도 수요 제어 효과나 인근 풍선효과 등을 잘 고려한 세부지침을 보완하지 않으면 집값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