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세법을 개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으로 '조세형평성'을 꼽을 수 있다. 가뜩이나 세금 내는 것도 달갑지 않은데, 남들과 비교해 억울한 기분은 들지 않도록 배려하는 개념이다.
세법학자들은 동일한 소득의 납세자는 세금도 같아야 한다는 '수평적 형평성'과 소득이 많은 사람은 더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수직적 형평성'으로 구분한다. 정부가 종교인에게 소득세를 부과하려는 이유는 근로자와의 수평적 형평을 찾기 위함이고, 민주당이 부자 감세를 반대하는 이유는 수직적 형평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통과된 세법 개정안 가운데 대기업에 대한 최저한세율을 인상하는 법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조세형평성의 수평적·수직적 요소를 모두 충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이 각종 조세 감면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으로 부담할 세액을 올리면서 특례를 적용받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수평을 맞췄고, 세율인상 대상을 과세표준 1000억원 초과 기업으로 한정해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각을 세웠다. 게다가 2018년까지 1조5000억원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어 재정 건전성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 세수 효과 1조5천+α…종부세 1년치
최저한세는 기업이 아무리 세금을 많이 깎더라도 최소한의 세금은 납부해야 하는 제도로 과세표준에 따라 다른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과세표준의 7%를 최저한세로 규정하고, 일반기업은 과세표준에 따라 100억원 이하 10%, 과세표준 1000억원 이하 12%로 정했다.
과세표준이 1000억원을 넘는 기업은 지난해까지 최저한세율이 16%였지만, 올해부터 17%로 올랐다. 예를 들어 과세표준이 3000억원인 기업은 지난해 최소 480억원의 법인세를 내야 했지만, 올해는 51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10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최저한세율을 1%포인트 올리면서 올해 1495억원의 법인세 수입이 늘어나고, 내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3000여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걷을 수 있다.
최저한세율 인상으로 적용대상 기업 수가 늘어나면 실제 세수입의 증가 폭은 더 크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설명이다. 결국 5년간 최소 1조5000억원의 세수를 추가 확보하면서 한해 종합부동산세로 걷는 세금(2013년 부과액 1조3700억원)을 한번에 해결했다.
◇ 17개 대기업이 세금 1675억씩
그동안 최저한세에 걸리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국세청의 2013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2년 귀속 법인세 과세표준이 1000억원을 초과한 기업 중 최저한세를 적용받은 곳은 17개로 해당 구간 기업(251개)의 6.8%에 불과했다.
이들 17개 대기업이 부담한 세액은 2조8476억원으로 1기업당 1675억원에 달했다. 극소수의 대기업들이 최저한세 규정으로 상당한 세금을 납부하는 구조였다.
같은 기간 과세표준 1000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총부담세액/과세표준)은 평균 17.7%로 집계됐다. 당시 해당구간 기업의 최저한세율이 14%였던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기업이 최저한세 이상의 세금을 부담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대기업 최저한세율이 2013년 16%로 2%p 오른데 이어 올해도 17%까지 인상되면서 적용대상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법인세 실효세율 15~16% 언저리에 있던 기업들은 바뀐 최저한세 규정에 따라 거액의 세금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이 고용창출이나 연구개발(R&D) 등 투자세액공제 규모가 큰 대기업들도 최저한세율 인상으로 연간 수백억원의 세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12년 기준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실효세율은 각각 16.3%, 15.8%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