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매년 여름 세금 정책을 바꾸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한다. 수시로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국민의 실생활과 기업 경영을 향해 정책적인 색채를 입히는 작업이다.
지난해 정부는 '고통없이 거위 깃털을 뽑는' 세제개편안으로 곤욕을 치렀다. 설익은 방안에 당국자의 말실수가 겹치면서 거센 조세저항을 불러왔고, 결국 자체 수정을 통한 '리콜'의 굴욕을 맛봤다. 올해는 박근혜 정부 2년차를 맞아 임기 내 세금 정책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는 만큼, 정책 입안자들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이제 각계 의견 수렴과 자체 아이디어 회의에 들어갈 단계인데, 국제적인 세제개편 추세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등은 최근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해외 사례를 통해 올해 정부가 가져갈 세금 정책의 힌트를 찾아본다.

◇ "중산층을 보호하라"
중산층에 대한 세금 지원은 세제개편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지난 달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연소득 1500만원~1억원(1만4000달러~10만3000달러)의 중산층에 대해 자녀 양육비용 세액공제 지원액을 인상했다.
연간 260만원(2500달러)씩 지원하는 교육비 세액공제(AOTC)와 아동세액공제(CTC)는 아예 일몰 기한을 없애 영구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캐나다는 올해부터 입양비용 세액공제의 한도를 1100만원(1만1774캐나다달러)에서 1400만원(1만5000캐나다달러)로 인상하고, 의료비 세액공제의 범위도 확대했다.
우리나라는 교육비 세액공제 한도가 300만원(대학생은 900만원)으로 미국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다. 올해부터 도입한 자녀세액공제는 1인당 15만원(3명 이상이면 20만원) 수준이다. 교육비나 의료비 등 특별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한 첫 해인 만큼, 실제 세부담 추이를 지켜본 후 개편이 이뤄질 전망이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은 부모를 모시는 직장인에 대한 세금 혜택을 늘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부모를 부양할 경우 공제 규모를 600만원(7000싱가포르달러)에서 750만원(9000싱가포르달러)로 늘렸고, 홍콩도 부모 공제 금액을 동거 조건에 따라 250만원~1000만원(1만9000홍콩달러~8만홍콩달러) 수준으로 확대했다.
우리나라의 부양가족 공제액은 1인당 150만원이며, 경로우대자(70세 이상)일 경우 100만원을 추가로 공제받는다. 경로우대 공제는 2009년 축소된 데 이어, 최근에도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혜택을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싱가포르나 홍콩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 '부자 증세' 열풍
고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부자 증세'는 북미지역에서 활발하게 나타난다. 미국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고소득자에게 30% 이상의 공정분배세(fair share tax)를 부과할 방침이다. 조세감면 규모도 고소득자에 한해 28%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도 올해부터 고소득자가 미성년자 자녀에게 물려주는 자본이득에 대해 과세를 강화했다. 증여세와 별도로 미성년자가 주식 배당이나 신탁·파트너십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을 분리해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근로소득공제율을 낮추는 등 고소득 직장인의 소득세 부담을 늘리는 세제개편을 실시했다. 올해 역시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부자 증세'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 기업엔 연구개발 쿠폰
기업들을 지원하는 세금감면 제도 중에는 연구개발 공제가 가장 앞서있다. 이탈리아는 2016년까지 기업 연구개발비용에 대한 세액공제를 연간 36억원(250만유로) 한도로 도입했고, 네덜란드는 올해부터 연구개발 공제율을 54%에서 60%로 인상했다.
싱가포르는 50%에서 300%까지 공제하는 연구개발 세제 혜택의 일몰 기한을 2025년까지로 연장했다. 미국은 연구개발 세액공제율을 14%에서 17%로 인상하고, 일몰기한 없이 영구 적용키로 했다. 기업이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정책이다.
우리나라도 연구개발비의 30%까지 세액공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 일몰을 맞는다.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규모는 지난해 2조9155억원으로 전체 조세감면 항목 가운데 가장 컸다.
기업에 대한 대표적 세제지원 제도로 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연장될 가능성은 높지만, 싱가포르처럼 화끈한 '10년 연장' 카드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디지털' 세금이 뜬다
미국은 최근 변화된 인터넷 시장 환경을 반영해 국제적 조세회피를 위한 디지털 재화와 서비스 거래를 과세하는 방안을 내놨다. 미국법인이 소유한 외국법인에서 발생하는 이익금에 세금을 매기는 '서브파트(Subpart) F' 소득 과세의 일환으로 다국적 인터넷 기업들을 겨냥한 것이다.
유럽도 디지털 과세에 관심이 많다. 영국은 내년부터 인터넷 사용자가 내려받은 유료 디지털 컨텐츠 매출에 대해 20%의 부가가치세를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등이 과세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는 오는 7월부터 외국기업이 제공하는 온라인 광고에 부가가치세를 과세할 방침이다. 이탈리아에서 사용한 온라인 검색 광고와 링크의 광고수입에 부가세를 매기고, 해당 기업에 대해는 법인세를 부과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유럽연합 국가들이 내년부터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 부가세를 과세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해외 오픈 마켓을 통해 국내에 공급되는 앱 등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합리적 과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