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절세극장]보험설계사 뒤통수 친 세무사

  • 2018.11.09(금) 08:40

증빙 없이 소득세 신고, 국세청 무더기 세금 추징
동료 146명 부고(訃告)장 제출, 비용처리 불가 판정

세금을 둘러싼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연들을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전해드립니다. 사람 냄새 가득한 그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유용한 절세팁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숱한 화제를 일으켰던 '19금 세금'의 후속 시리즈, 재미로 읽고 세금도 배우는 '절세극장'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우리의 목표는 의사 고객을 유치하는 겁니다."
"부지점장님, 하루 몇통씩 전화하면 되나요?"
"9시부터 6시까지 200통만 걸어주세요."
 
생명보험회사 세일즈매니저(부지점장)인 김모씨는 판매왕을 두 번이나 차지한 보험설계사입니다.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와 고객을 상대하는 기술이 탁월해 동료들 사이에서도 보험설계사의 롤모델로 꼽힐 정도인데요.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명절마다 선물도 보내고 경조사까지 부지런히 챙기기 때문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죠. 연평균 1000건이 넘는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억대 연봉을 받고 있기도 하죠. 
 
회사에서도 그에게 중책을 맡기고 있는데요. 보험설계사 선발부터 교육과 지원업무까지 모두 그의 몫이죠. 신입 보험설계사들에겐 영업 노하우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선생님이자 언제든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언니같은 존재였어요. 
 
이미 상당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신규 고객 모집도 게을리 하지 않았죠. 직접 발품을 팔 시간이 부족할 땐 아르바이트를 채용해 보험 가입 권유 전화를 맡기기도 했죠. 주위에서 쉬엄쉬엄 하라고 뜯어말릴 정도였지만 그의 악바리 근성은 어딜가지 않았습니다. 
 
"부지점장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어머! 오랜만이네. 거기 지점장님 잘 계시지?"
"잘 계세요. 그리고 저 결혼해요. 청첩장 드리려고요."
 
신입 보험설계사들의 멘토였기 때문에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아오는 후배들이 워낙 많았어요. 회사 내부 메일로 받는 경조사 소식도 끊이지 않았는데요. 직접 가지 못할 때는 동료에게 부탁해 축의금과 부의금을 전달했죠. 
 
그가 1년 동안 경조사를 챙긴 사람들을 세어보니 300여명에 달했고 지출한 비용만 1000만원을 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점장이 김씨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경조사비를 나중에 돌려받는 방법이 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조목조목 설명했어요.  
 
"부지점장! 경조사비 나중에 세금 환급되는 거 알아?"
"정말요? 증빙도 없는데 어떻게 환급받아요?"
"나도 받았다니깐. 내가 세무사 소개해줄까?"
 
그렇게 지점장의 소개로 U세무사를 알게 됐는데요. 그는 거침이 없었어요. 경조사비는 물론이고 마트나 백화점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비용까지 모두 공제받을 수 있다고 했어요. 김씨도 처음에는 세무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가 실제로 세금을 환급받아 준 설계사들의 신고내역서를 보고 나서 마음이 움직였죠. 
 
김씨는 U세무사에게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맡기고 종합소득세 신고를 부탁했어요. 청첩장과 부고장도 빠짐없이 챙겨서 제출했죠. 
 
U세무사는 다른 세무사에게 맡겼을 때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환급받아줬는데요.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어보였고 세금을 돌려받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혼자만 절세 방법을 알고 있는 게 미안했던 김씨는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U세무사를 소개했고 회사 내에서도 소문이 널리 퍼졌어요. U세무사는 보험설계사들 사이에서 최고의 절세 전문가로 각광받게 됐죠. 
 
김씨도 세금 신고는 U세무사에게 모두 맡기고 고객 관리에만 전념했어요. 3년이 넘도록 국세청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세금 신고가 제대로 이뤄진 줄 알고 있었죠. 그런데 지난해 3월 갑자기 국세청의 세금 통지서를 받게 됐어요. 
 
종합소득세 신고가 잘못됐으니 해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세금을 추징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U세무사는 전화도 받지 않고 잠적한 상태였어요. 동료 보험설계사들도 국세청 안내문을 받았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죠. 김씨는 직접 세무서를 찾아갔어요. 
 
"세무사에게 증빙을 보내서 제대로 신고했는데 뭐가 문제인거죠?"
"그 세무사는 증빙을 제출한 적이 없습니다. 직접 소명하세요."
 
김씨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수소문해보니 U세무사에게 사기를 당한 보험설계사가 5000명에 달했어요. 마침 사태를 수습해주겠다는 세무사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김씨는 세무사의 안내를 받아 146명의 부고장과 신용카드 사용내역, 아르바이트 인건비 지급내역 등 증빙서류로 갖춰 국세청에 제출했어요. 
 
하지만 국세청은 김씨의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어요. 부의금은 실제로 지출됐는지를 알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고, 신용카드 사용금액의 상당액도 사업경비가 아니라 가사경비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동료 보험설계사들과 함께 조세심판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과세 처분을 뒤집을 수 없었어요. 조세심판원은 "증빙으로 제출한 부고장의 지출처가 각 지점 소속 보험설계사이기 때문에 사업소득과 관련한 비용으로 볼 수 없으며 실제로 부의금을 지급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김씨와 함께 심판청구를 제기한 보험설계사들도 모두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요. 세무사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보험설계사들은 환급받았던 세금뿐만 아니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산세까지 더 내며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 절세Tip
보험설계사의 사업소득을 계산할 때 업무와 관련해 지출한 경조금은 1건당 20만원 이내까지 접대비로 비용 처리할 수 있다. 
다만 고객관리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회사 동료와의 관계를 위해 지급한 경조금은 접대비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경조금을 비용으로 인정받으려면 업무 관련자에게 지출한 청첩장이나 부고장 등을 증빙으로 갖춰야 한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