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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家 로열패밀리]⑤ 차남은 왜 아버지를 거역했나

  • 2015.08.03(월) 16:47

롯데그룹 경영권 '물밑다툼'..두형제 스타일·사업성과 달라
日롯데 장악해야 韓롯데 지배가능..신동빈 "롯데는 한국기업"

 

불과 보름 전 한국과 일본 롯데를 이끄는 단일 수장의 자리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신동빈(60·사진) 롯데그룹 회장은 지금 '살얼음판' 위에 서있다. 형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자신의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지만 반대의 상황이면 자신이 맡고 있던 한국 롯데의 후계자 자리도 내줘야할 처지에 몰린다. 신 회장은 이번에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달 15일 일본 도쿄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신 회장이 일본 롯데를 이끄는 최고경영자로 선임됐을 때 바다 건너 서울 롯데호텔에선 형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측 인사들이 동생(신동빈) 말고 형(신동주)을 따르라며 전현직 임원에 대한 회유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일주일 전 형과 동생의 만남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양측이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하루 뒤(16일) 동생은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 "한국과 일본의 롯데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일 통합경영을 공식화했고, 이튿날 형은 아버지로부터 동생을 해임한다는 서류를 받아냈다. 약 열흘 뒤(27일) 롯데홀딩스 임원에 대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손가락 해임'과 다음날(28일) 일어난 차남에 의한 '아버지 해임'은 양측의 갈등이 표면화된 사건에 불과했던 셈이다.

연년생인 두 형제는 비슷한 성장경로를 밟았다. 어머니가 같았고 출신대학(아오야마가쿠인 대학)도 동일했다. 둘다 롯데가 아닌 외부(형은 미쓰비시상사, 동생은 노무라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서른 초반에 롯데에 입사하는 공통점을 지녔다.

하지만 성격은 달랐던 모양이다. 신 전 부회장이 장남으로서 아버지나 친인척 의견에 순종하는 편이었다면 신 회장은 때론 아버지와 의견을 달리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고집이 있었다. 지난달 31일 부친의 제사에 참석하려고 신 전 부회장의 서울집을 찾은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의 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신 사장은 동주·동빈의 삼촌이다.

그는 "신동주는 한국계다. 한국 일가를 알고 어른을 섬길 줄 안다"고 했다. 신동빈 회장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해임한 것은 도덕적으로 이상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신 사장이 신 전 부회장 편에서 후견인 역할을 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평소 두 형제가 친인척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 회장은 그룹 경영에서도 친인척보다는 전문경영인을 우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는 '거화취실(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취한다)'을 강조하며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던 아버지와 달랐다. 신 회장은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롯데쇼핑의 기업공개(2006년)를 이끌어내는 등 외부와의 접촉면을 넓히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 때 확보한 3조5000억원은 한국 롯데가 기업 인수합병에 나설 때 든든한 실탄역할을 했다. 일본 롯데는 계열사 37개 가운데 지금까지 기업공개를 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형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을지 몰라도 기업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고, 동생은 아버지에게 순종적이진 않았지만 롯데그룹의 사업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동생인 신 회장을 '야심가'로 보는 시각도 있다.

두 형제는 결혼식의 풍경도 달랐다. 신 전 부회장은 부친이 무역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은주 씨와 만나 1992년 서울에서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반면 신 회장은 그보다 7년 앞서 일본 대형 건설사인 다이세이건설 부회장의 딸인 마나미 씨와 도쿄에서 결혼했다. 당시 결혼식에는 전현직 수상을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를 손에 넣으려는 이유를 단순히 사업확대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매출 80조원대의 기업을 이끄는 신 회장이 5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형의 회사를 빼앗으려고 이번 일을 벌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본 롯데의 전체 매출은 국내로 치면 롯데하이마트(3조원대)와 롯데제과(2조원대) 두 회사의 매출을 더한 수준에 불과하다.

오히려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 롯데 위에 있는 지금의 지배구조로는 한국 롯데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일본 롯데는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지분을 99% 보유하고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국 롯데그룹 전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신 총괄회장이 든든한 우산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엔 이를 장담할 수 없어 신 회장이 '행동'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두 아들간 지분관계를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손가락 해임'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달 26일 이후 줄곧 일본에 머물던 신 회장은 3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신 회장은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롯데가 일본기업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기업이다. 매출의 95% 우리나라(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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