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궤양 및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에 쓰이는 라니티딘 제제가 결국 제2의 발사르탄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해외에서 경고성 유해보고를 발표했을 당시 국내 제품은 안전하다고 했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품 회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 회수로 가닥잡고 있으면서도 공식 발표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업계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식약처는 25일 오후 3시 제약바이오협회에서 최근 라니티딘 사태와 관련해 유해성 등에 관해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잔탁을 포함해 국내 라니티딘 일부 제품에 대한 회수 조치를 결정했다. 이에 이날 설명회에서 회수 조치 품목과 유해성 등에 대한 설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갑작스럽게 일정을 잡았다가 돌연 취소한 이유는 해외에서도 회수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인데다 아직 라니티딘 제품에 대한 검사가 전부 이뤄지지 않은 만큼 신중을 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식약처는 라니티딘 원료제조소 11곳과 395개 제품에 대해 검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와 유럽의약품청(EMA)은 잔탁 등 라니티딘 제품에서 소량의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가 검출됐다면서 경고성 위해보고를 발표했지만 해당 품목들에 대한 회수 조치를 내리지는 않았다. 인체에 유해할 만큼의 용량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NDMA는 공업용 화학물질로 심한 간 독성을 유발하고 장기복용 시 간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암 추정물질인 2A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의아한 점은 잔탁 제조사인 노바티스 자회사인 산도스에서 FDA 기준 허용치를 넘는 NDMA가 검출됐다며 자체적으로 유통 중단 및 제품 회수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국내 잔탁 유통‧판매는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맡고 있다. 미국의 한 연구기관 역시 잔탁 150mg 1정당 최소 251만ng(나노그램)에서 최대 327만ng이 검출됐다며 FDA에 회수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식약처가 FDA의 조치를 기반으로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어서 제약업계와 약국가에선 라니티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발사르탄 사태와 같은 수순을 밟을 경우 제약사들은 다시 대규모 제품 회수 및 교체에 대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지난해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의 시장 규모는 2664억원에 달했다. 국내 제약사에서 허가받은 잔탁 제네릭만 200개 제품이 넘는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발사르탄 사태로 국내 제약사들의 손실이 총 500억원에 달했다"라며 "FDA에 좌우하지 말고 국내 라니티딘 제품에서 얼마만큼의 NDMA가 검출됐는지 정확하게 공개하고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식 발표가 늦어질수록 환자들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져 무해 품목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뿐만 아니라 약사들 사이에서 라니티딘이 들어간 일반의약품(OTC)에 대한 판매 기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약사대표 단체인 대한약사회 차원에서도 일선 약국에 '라니티딘' 제제를 포함한 의약품 판매를 신중히 하라고 당부했다.
대한약사회 권혁노 약국이사는 "처방 없이 판매되는 일반의약품은 가급적 판매를 유보하고 정부의 조치 결과를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라며 혹시 모를 의약품의 회수 명령에 대비해 약국의 재고 현황을 파악하도록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