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세종에서 10개월째 시범운영 중인 1회용컵 보증금제의 전국화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환경부는 2025년까지 전국화를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현장에서 부작용 발생 우려가 커지면서 지방자치단체별 지역경제 여건에 따라 시행여부를 결정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보증금제 전국화 사실상 무산
30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1회용컵 보증금제를 지방자치단체의 경제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지난달 발의됐다. 1회용컵 보증금제는 1회용컵에 담긴 음료를 구매할 때 보증금 300원을 지불하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환경부는 "국회에서 지자체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돼 관계부처·지자체·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KFA)도 지난 20일 소상공인 환경 규제 현장간담회에서 1회용컵 보증금제 지자체의 여건에 따라 시행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에 대해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전국 시행이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지자체들이 보증금제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제도 시행이 잘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제도를 강제 시행하기엔 지역 상인들의 반발에 대한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국 시행을 철회하고 일부 지역에서 시범운영한 이유도 현장에서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거세진 탓이었다.
현장도 혼란
실제 사례에서도 '자율화'의 어려움이 드러났다. 제주도는 지난 3월 20일부터 시범사업 미참여 매장에 처음 적발 시 100만원, 2회차부터는 1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제주도는 대상 매장 502개소 중 미이행한 9개 매장에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이 덕분에 제주도의 컵 반환율은 70%를 웃돌았다. 반면 참여 강제성이 없는 세종시의 컵 반환율은 45% 수준이다. 강제성을 두지 않은 자율 시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현장에서 컵 보증금제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은 인력이 많지 않은 소형 매장의 부담이 가장 큰 이유다. 컵에 반납용 라벨을 부착하거나 보증금제를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불만 등을 고스란히 매장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커피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는 A씨는 “고객들이 왜 300원을 더 내야 하냐고 항의한다"며 "제도를 이해시키기 위해 설명하고, 컵에 라벨을 부착하느라 쉬는 시간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추가 인력을 구하는 것도 인건비 부담으로 불가능한 상태라는 설명이다.
친환경 부담 나눠야
컵 보증금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6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지자체에 책임과 권한 부여 △컵보증금 대상 가맹점 확대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교차반납 허용, 무인회수기 확대 △가맹본부의 라벨 부착완료 컵 제공 책임 부과 △반납 대상을 플라스틱컵으로 한정(종이컵 제외) 등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뚜렷한 대안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현장이나 가맹 본사의 추가 부담을 전제로 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실제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가맹 본사가 라벨을 부착한 컵을 매장에 배포하도록 할 경우 연간 수십억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교차반납이나 무인회수기 확대 역시 현장의 부담을 키울 우려가 높다.
또 다른 대안도 제기되고 있다. 1회용컵을 다루는 판매자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안이 아니라 구매자에게 보너스를 주는 방안이다. 현재 일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은 개인컵이나 텀블러를 이용해 음료를 구매하면 일정 금액을 할인해 주는데, 할인폭을 키워 다회용컵 사용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방안은 결국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이라며 "환경 보호는 모두의 책임인 만큼 판매자와 소비자가 적절히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