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경기는 불황, 식품업계는 호황
이번 한 주는 식품업계의 '실적 주간'이었습니다. CJ제일제당, 오뚜기, 오리온, 동원F&B, 매일유업, 대상, 풀무원, 농심 등 주요 식품 기업들이 일제히 3분기 실적을 발표했죠. 이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그야말로 '우수'했습니다.
'라면 3사'로 묶이는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대폭 증가했습니다. 특히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0~120% 이상 급증했죠. 다른 곳들도 비슷합니다. 빙그레는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154%나 늘었고 매일유업도 63.7% 증가했습니다. 풀무원, 대상도 50% 이상 실적이 개선됐죠. 식품업계 리딩 기업인 CJ제일제당 정도가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감소했지만, 그나마도 식품 부문만 떼놓고 보면 12% 성장했습니다.
국내 경기가 호황이었던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 국내 경기는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습니다. 실제 올해 3분기까지 코스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감소했습니다. 코스닥 상장사들의 영업이익도 30% 넘게 줄었죠.
이런 수치들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올 한 해가 불황의 해였던 건 분명합니다. 당장 이번에 호실적을 낸 식품 기업들도 올해 내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위기 상황임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럼 이런 불황 속에서도 '깜짝 실적'을 낸 식품업계의 저력은 어디서 온 걸까요.
기저효과 VS 가격인상
업계에서는 이번 호실적 릴레이의 가장 큰 요인이 '기저효과'라고 합니다. 비교군인 지난해 3분기에 워낙 실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평년 수준으로 반등한 올해 실적이 더 눈에 띈다는 거죠.
매일유업은 올 3분기 영업이익이 171억원이었는데요. 지난해 3분기엔 105억원, 2021년 3분기엔 222억원이었습니다. 지난해보다는 60% 이상 많지만 2년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줄어든 셈이니 기저효과라는 해명이 어느 정도 맞는 듯도 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설명이 통하지 않는 곳이 더 많습니다. 빙그레는 올 3분기에 65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요. 빙그레의 '연간' 영업이익이 600억원대를 기록한 건 2012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농심과 삼양식품 역시 기저효과를 논하기 어려운 기록적인 이익을 냈습니다.
이 때문에 식품업계의 호실적의 요인을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가격 인상'이 있겠죠. 식품업계는 코로나19 이후 매년 1~2차례 이상 가격을 올렸습니다. 물류비 급등으로 인한 원가 부담이 가장 큰 이유였죠. 코로나19가 어느정도 잡혔나 싶더니 이제는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나 밀·옥수수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 '원가'가 급격히 안정화되기 시작합니다. 올해 들어 밀과 팜유, 옥수수 등의 국제 가격은 고점을 찍은 지난해 5월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원가 부담에 가격을 올렸는데, 원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니 올린 가격만큼 이윤이 남게 된 거죠.
한 번 더 내릴까
올해 식품업계는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간 올리기만 했지 내릴 줄 몰랐던 가격표를 일제히 낮춰 잡은 겁니다. 지난 6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2022년 9~10월 많이 올렸는데 지금은 국제 밀 가격이 약 50% 내린 만큼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기업들에 가격 인하 압박을 한 거죠.
이에 밀가루를 핵심 원재료로 사용하는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라면 4사가 주요 제품 가격을 5% 남짓 내렸고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SPC 등 제과·제빵 기업들도 가격 인하에 동참했습니다.
추 부총리는 지난 14일에도 다시 한 번 식품업계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서울 이마트 용산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식품업계의 용량 줄이기(슈링크플레이션)를 지적하며 "정직한 경영이 아니다. 그렇게 판매하는 제품과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한 겁니다.
추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원가 상승 요인이 없는데도 부당하게 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 단체 등에서 감시 활동을 강화하고 언론에서도 적극 보도를 통해 고발해달라"며 "업계 간담회 등을 통해 편승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식품업계가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줄이는 식으로 사실상의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는 것을 겨냥한 경고였습니다.
정부의 물가 안정을 위한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호실적을 낸 식품업계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모이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전문가들은 4분기에도 식품업계가 호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식품업계의 다음 선택이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