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잇단 악재에 속수무책…애경, '그룹 모태' 애경산업 내놨다

  • 2025.04.02(수) 14:43

주력 계열사 성장 정체에 제주항공 참사까지
유동성 위기 다가오자 현금 마련 필요성 커져
재무구조 개선 후 포트폴리오 재조정

그래픽=비즈워치

애경그룹이 모태 사업인 애경산업을 매각한다.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에 주가 하락까지 겹치며 그룹 유동성 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룹의 모태 사업이자 '알짜'인 애경산업을 매각해 지주사 AK홀딩스의 부채를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애경그룹은 애경케미칼, AK플라자 등의 경영난에 이어 지난해 말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치면서 창립 71년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애경그룹은 애경산업을 매각한 후 재무구조를 정상화해 화학·항공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한다는 방침이다.

생활용품은 그룹 모태인데

애경그룹은 최근 AK홀딩스, 애경자산관리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38%를 매각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애경그룹은 주간사를 선정하고 국내외 대형 사모펀드(PEF)들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경산업은 생활용품과 화장품 사업을 하는 애경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다. 생활용품 사업은 샴푸 브랜드 '케라시스', 세제 브랜드 '트리오'와 '스파크', '리큐', 치약 '2080' 등으로 꾸준한 매출을 내고 있다. 화장품은 '에이지투웨니스'와 '루나' 등의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K뷰티 열풍을 타고 미국, 일본 등으로 수출도 늘리는 중이다.

/그래픽=비즈워치

지난해 애경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 증가한 6791억원,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4.4% 감소한 468억원을 기록했다. 사업별 매출 비중은 화장품이 약 39%, 생활용품이 61%를 차지했다.

매각 대상 지분의 가치는 현재 주가 기준으로 약 22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애경산업 주가는 다른 화장품·생활용품업체에 비해 크게 저평가 된 상태다. 때문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실제 매각가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애경그룹이 애경산업을 매각하게 되면 그룹 내 주력 계열사는 제주항공과 애경케미칼, AK플라자만 남게 된다. 이처럼 애경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선 것은 그룹 재무구조가 점차 흔들리고 있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기 위해서다. 애경그룹이 그룹 모태사업이자 알짜 계열사까지 내놓은 것은 그만큼 그룹 전반에 드리워진 위기감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라진 확장 본능

애경그룹은 1954년 애경산업의 전신인 비누제조업체 애경유지공업에서 시작됐다. 창업주인 고(故) 채몽인 전 회장은 1956년 화장비누 '미향'을 시작으로 1966년 국내 최초 주방세제 '트리오' 등을 선보이며 회사를 키웠다. 그러던 중 채 전 회장이 1970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부인 장영신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섰다.

이후 애경그룹은 세제를 기반으로 1970년대에 기초화학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1990년대에는 애경유지 영등포 공장 부지에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을 열며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장 회장의 자녀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채동석 애경그룹 부회장 등이 경영에 참여하며 그룹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애경그룹은 항공, 면세점, 부동산개발까지 뛰어들며 사세를 키웠다. 2010년대에는 애경산업의 화장품 사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새로운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애경그룹은 2018년 자산규모 5조원의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애경그룹은 2020년 이후로 성장이 완전히 정체된 상태다. 가장 뼈아픈 것은 그룹을 지탱하는 제주항공의 부진이다. 제주항공은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2019년 1조3839억원이었던 제주항공의 매출액은 2020년 3770억원, 2021년 2731억원까지 줄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4년 연속 수천억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래픽=비즈워치

애경그룹의 주축 중 하나인 화학사업 역시 부진하다. 애경그룹은 2021년 애경유화, 애경화학, AK켐텍 등 3개 화학 계열사를 하나로 통합한 애경케미칼을 출범시켰다. 출범 첫 해 애경케미칼의 매출액은 1조5701억원에서 이듬해 2조1764억원으로 치솟았고 2년 연속 900억원대 영업이익도 냈다.

하지만 최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석유화학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으면서 애경케미칼의 실적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애경케미칼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6422억원, 영업이익은 155억원에 그쳤다.

AK플라자의 부진도 심각하다. AK플라자는 2013년 한때 매출액이 5000억이 넘는 대규모 백화점이었다. 하지만 이후 성장이 완전히 정체돼있다. AK플라자의 2024년 매출액은 2952억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2020년 적자로 전환한 뒤 5년째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애경그룹은 최근 이렇다 할 신사업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룹 초창기 다양한 신사업에 뛰어들며 사세를 키워온 것과 대조적이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이스타항공 등의 인수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유동성 위기의 시작

이 때문에 지주사 AK홀딩스는 그동안 대출을 받아 계열사들에 대한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AK홀딩스의 부채비율이 치솟기 시작했다. 2020년 말 228.8%였던 AK홀딩스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328.7%까지 올랐다.

문제는 계열사들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주가도 크게 부진하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연말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는 애경그룹에게 직격탄이 됐다. 제주항공의 주가가 지난해 12월 27일 종가 기준 8210원에서 지난 1일 기준 6820원까지 떨어졌다. 현재 주가 수준은 2022년 AK홀딩스가 제주항공을 기초자산으로 해 발행했던 교환사채(EB)의 전환가액의 절반에 불과하다. 올해 초 EB 투자자들이 풋옵션을 행사하면서 AK홀딩스는 조기 상환을 해야만 했다.

/그래픽=비즈워치

다른 계열사들의 주가 부진도 AK홀딩스의 발목을 잡고 있다. AK홀딩스는 계열사 지원을 위해 대출을 받을 때 제주항공, 애경산업, 애경케미칼 등 자회사들의 주식을 담보로 내놔서다. 애경산업의 주가는 지난해 5월 31일 장중 2만6550원까지 올랐으나 지난 1일 종가는 1만4500원에 불과하다. 애경케미칼도 지난해 8월 장중 한때 주가가 1만5150원까지 올랐으나 지난 1일 종가는 현재 주가는 7000원선이다.

이 주식들의 주가가 계속 떨어져 담보 가치가 하락하면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반대매매(채권자의 주식 강제 매각)가 이뤄질 수 있다. AK홀딩스가 계열사 지원을 위해 차입을 했지만 계열사 실적이 개선되지 않아 주가가 하락하고, 다시 AK홀딩스의 재무구조가 악화하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AK홀딩스는 그룹 모태이자 알짜 회사인 애경산업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한 후 차입금을 상환할 것으로 보인다. 애경산업을 매각한다는 건 이 사업을 비주력 사업으로 분류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애경산업이 매각되면 애경그룹은 항공과 화학을 중심으로 그룹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할 전망이다. 재무구조 개선이 이뤄지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그룹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 포트폴리오 재정비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