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가 화장품과 관련된 사업에서 잇따라 손을 떼고 있다. 올해 초 자사 뷰티 브랜드를 철수한 데 이어 내년에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내 DF1(화장품·향수) 권역의 면세점 운영을 종료할 예정이다. 최근 화장품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믿었는데
호텔신라는 올해 2월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시효'의 사업을 접었다. 지난 2022년 11월 첫 선을 보인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당초 호텔신라는 호텔·레저와 면세 중심 사업 구조의 다변화를 꾀하기 위해 화장품 사업에 눈독을 들였다. 다만 시효가 기대와 달리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호텔신라의 '뷰티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관측이 많다.
가장 큰 원인은 한정적인 판매 채널이다. 시효는 신라호텔, 신라면세점 등 호텔신라의 오프라인 채널과 일부 온라인 채널(컬리·롯데온·공식몰)을 통해서만 제품을 판매해왔다. 소비자 접근성은 물론 인지도 확보에 한계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시효 운영사인 로시안은 론칭 첫 해 2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3년 80억원, 지난해 81억원 등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인천공항 일부 면세 사업권을 중도 반납하기로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호텔신라는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인천공항점 DF1 권역의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신라면세점이 2023년 인천공항공사로부터 입찰받은 구역이다. 기존 계약대로라면 2033년까지 운영이 가능했지만, 이번 결정에 따라 내년 3월부로 문을 닫을 예정이다.
신라면세점이 중도 해지에 따라 물어내야 할 위약금은 1900억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신라면세점이 사업 종료를 강행하고 나선 건 수익성 악화를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면세점은 DF1 사업 유지를 위해 매달 약 300억원, 연간 3600억원의 임차료를 부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신라면세점은 올해 상반기에만 16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익은 나지 않는데 임차료 부담은 커지고 있는 셈이다.선택과 집중
업계에서는 호텔신라의 사업 철수가 단순 부진이 아닌 '전략적 후퇴'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호텔신라 전체 매출의 8할은 면세 부문에서 나온다. 그러나 최근 면세점의 핵심이던 화장품 판매는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손실을 감내하고라도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객 구조와 수익 구조의 변화가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의 한시적 무비자 입국 허용 조치에 따라 '면세점 큰 손'인 유커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다만 해당 정책이 종료되면 다시 급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종인 만큼 면세점 제품을 사는 것이 온라인 직구나 현지 구매보다 비싼 경우도 잦다.
화장품 유통 생태계가 급격하게 재편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과거 면세점은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의 '쇼윈도'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올리브영과 다이소 등 MZ세대가 중심이 되는 유통 채널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소비 패턴과 가성비가 주류가 된 시장에서 프리미엄 콘셉트를 추구하는 시효나 면세점의 화장품 사업 모델은 이런 흐름과는 괴리감이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호텔신라는 향후 국내외 면세점 운영을 효율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패션·부티크 부문과 같은 고수익 사업군에 역량을 집중하고 경험 중심의 리테일 콘셉트로 전환하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주얼리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중심으로 매장을 재편,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는 체험형 공간을 구축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 호텔·레저 부문의 성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이 낮은 영역들을 정리하는 대신 핵심 경쟁력에 자원을 재배분하겠다는 하나의 시그널로 해석된다"며 "면세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현 시점에서 질적 성장과 시장 대응력을 높이려는 장기적인 포석"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