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신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금융권 '섭렵' 태세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는 평이 나온다. 처음 은행장들을 만난 자리와 이로부터 보름가량 지나 카드·캐피탈사 사장들을 만났을 때를 비교하면 "온도차가 확 느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달랐다. 앞서 지난달 20일 이 원장이 처음으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소집해 은행장들을 불러 모은 자리의 분위기는 서늘했다. 그는 은행권의 역대급 영업실적에 대해 "지나친 이익에 대한 비판"을 직접 거론하며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출구 전략 과정에서 취약차주 관리를 위해 정부뿐 아니라 은행도 자체적으로도 지원방안을 내놔야 한다는 주문도 던졌다. 은행권에 반복되는 금융사고를 지적하며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도 짚었다. 주의와 경고, 주문 등 강한 발언이 주를 이뤘던 셈이다.▷관련기사: '코로나 출구지원 은행도 나서라' 이복현 금감원장의 주문(6월20일)
그러나 5일 카드·캐피탈업계(여신전문금융업계)를 만나서는 확 달라진 모습이었다. 금융시장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잘 대처하자"며 다독이는 모습 위주였다. 발언의 톤도 주문보다는 당부, 격려에 가까웠다.
이날 가장 먼저 꺼낸 말부터 "여전사의 자금조달·운용상 특수성으로 취약 요인별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유동성 리스크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어 "선제적으로 자금 확보를 위해 자구노력을 진행해온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자금조달 여건이 더욱 악화되는 만큼 보수적인 상황을 가정해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고 비상자금 조달계획도 다시 한번 점검해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은행권에 수익성이 과도하다는 지적을 던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전업계에는 건전성을 지키는 데 더욱 집중해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카드업계가 염려하던 카드 수수료율, 카드론 금리 등의 인하에 대한 당국 차원의 요구나 언급도 이 자리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원장은 오히려 여전업계가 업계가 기다리던 '당근'도 던졌다. 네이버·카카오 등 결제사업에 가세한 빅테크 기업과의 규제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간담회 후 "개인적으로도 공정한 경쟁이라든가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라고 했다.
그는 간담회 시작 전부터 분위기를 북돋기도 했다. CEO들과 기념촬영을 하면서도 "화이팅 한번 할까요. (정면이 아닌 카메라가 많이 배치된 입구쪽을 가리키며) 이쪽도 한 번 보시죠"라며 친화적인 인상을 비치려 하기도 했다.
이렇게 달라진 이 원장의 모습은 취임 초기 '관치금융' 논란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은행장과의 첫 만남 뒤 '금융시장 개입이 과도하다', '검찰 출신이라 그런지 그립이 강하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유화적인 스탠스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전업계 자금조달 여건은 2년전 유동성 위기 때보다도 나빠져 있다. 지난 1일 기준 현재 여전채 스프레드(AA-, 3년만기)는 116베이시스포인트(bp)로 2020년 최고점(92bp)를 넘어섰다. 여전채 순발행 규모는 지난 6월에는 마이너스(-3000억원)로 돌아서기도 했다. 이날 한 CEO는 "자산 증가는 반토막인데 조달 비용은 두세 배로 불어난 상황"이라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근본적으로는 금융시장 불안 가중이 그의 태세 전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전반적으로 시장 불안이 커지니 금융당국의 정책기조도 현상유지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정 최우선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은 이 원장이 금감원 내부 정비조차 뒤로 미뤄둔 데서도 비쳐진다. 그는 "지금 상황, 현안 대응 중심이 금감원뿐만 아니라 금융당국 전체에서 제일 중요하다"며 "틀을 흔들 수 있는 어떤 급격한 조직 개편이나 인사도 현재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