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들이 사외이사 임기 연임을 자제하고, 이전보다 사외이사진 규모를 축소하는 것은 금융당국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권 중론이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업무계획에 금융지주와 은행 지배구조 구축 현황, 이사회 운영 적정성 점검을 포함하는 등 사외이사 역할 재정립을 포함하면서 이같은 분위기가 짙어졌다.
이로 인해 임기가 종료된 사외이사를 대신할 새 인물을 찾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한 ESG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금융지주들이 사외이사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외이사 축소…'관치'의 나비효과
그동안 4대 금융지주들은 사외이사진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ESG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금융지주의 사회적 책임이 강하게 요구되는 현재 여론을 고려하면 금융지주들의 사외이사진 축소는 오히려 여론에 역행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현재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서는 상법을 따르는데 상법상 금융지주들은 3명 이상의 사외이사만 꾸리면 된다"라면서도 "다만 ESG경영을 강조한 이후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할 필요성이 높아졌고 최근 몇년간 사외이사진을 늘려온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사외이사진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다. 금융지주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 금융당국의 압박이 역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경우 5년까지 연임할 수 있고 대체로 3년의 임기는 보장해주는 추세였는데 올해는 금융당국이 강하게 교체를 주문해 예년보다 교체폭이 큰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유독 사외이사 후보찾기가 쉽지 않다"라며 "관치 논란에 현재 여권과 관계가 있으면 리스트에서 제외되기도 했고 금융당국 경영간섭으로 사외이사가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할 것이란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지주 한 사외이사는 "최근에는 정치권의(금융지주 경영에 대한) 개입이 심하다보니 사외이사들의 활동에 고려해야 할 점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고 이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인사들도 많다"라고 토로했다.
결과적으로 사외이사가 애초 도입 목적인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보다는 정부의 정책 거수기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당국 입김 얼마나
실제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투명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를 만났고, 올해는 이사회와의 소통을 정례화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지주 입장에선 신규 사외이사 후보를 선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년보다 금융지주 사외이사 신규 후보들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시간이 걸린 이유다. ▷관련기사: 금융지주, 사외이사 선임 '장고'하는 이유(1월26일)
일례로 다른 금융지주의 경우 정기 주주총회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사외이사진 재편 등의 내용이 담긴 주주총회 주요안건을 일찌감치 공시했다. 반면 하나금융지주의 정기 주주총회 공시는 7일 밤늦게 이뤄졌다. 하나금융지주의 이번 정기주주총회 안건이 2022년 연결재무재표 승인, 정관 개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사진 개편에 관한 안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장고한 내색이 역력하다.
이와 관련 하나금융지주는 올해 김홍진, 양동훈, 허윤, 이정원, 박동문, 이강원 사외이사는 중임시키기로 결정했고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한 백태승, 권숙교 이사의 자리에는 원숙연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 이준서 동국대 경영대학 경영학과 교수를 후보로 추천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이다. 금감원은 올해 업무계획에서 은행지주와 은행의 지배구조 구축 현황과 이사회 운영의 적정성을 점검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지주 사외이사가 이사회 운영과 그룹 리스크 통제, 내부 통제체계 등 주요 지배구조 이슈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주제별 간담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또 신규 선임 사외이사를 대상으로는 워크숍 등을 통해 사외이사 역할과 책임에 대한 인식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두고 감독당국이 이사회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금감원은 감독당국과 이사회의 정례적 소통은 국제기구에서 권고하는 사항으로 해외 감독당국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업무계획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부터 이사회와 소통한 바 있는데 이를 제도화할 계획"이라며 "투명성 측면에서 이사회를 어떻게 지원할지 감독당국이 방향성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금융권 우려는 여전하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이사회 구성 등 투명한 지배구조는 중요한 부분"이라면서도 "선임 전부터 당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라면 이사회 운영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