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이자 장사', '돈 잔치' 등의 비판을 받으면서 지점을 줄이는 흐름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수익성을 위해 점포를 줄이는 것이 취약 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떨어뜨린다는 문제가 제기돼서죠. 금융당국은 점포 축소·폐쇄 관련 절차 법제화를 논의 중입니다. 제 2금융권 가운데 서민·노령층 등이 많이 찾는 저축은행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관심입니다.
은행 점포 마음대로 폐쇄 못한다…법제화 논의
1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는 은행의 무분별한 점포 감축을 억제하는 방안을 중점 안건으로 논의 중입니다.
현재도 당국은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를 통해 사전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있죠. 하지만 은행 자율로 이뤄지는 부분이 많아 금융 소비자 보호에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금융위는 특히 은행의 점포 축소나 폐쇄가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 등을 먼저 파악하는 '사전영향평가' 등을 아예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지난달 17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은행들은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점포를 폐쇄하거나 신규 고용 창출을 줄여 비용을 절감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며 은행 지점 통폐합 문제를 지적했는데요. 이는 숫자로도 보여집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지난해 전체 당기순이익은 15조8497억원이었죠. 전년(14조5431억원) 대비 1조3066억원(8.98%)가량 늘어난 사상 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많이 벌면서도 은행의 점포 축소 움직임은 가속화했습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은행 국내 점포 수(지점·출장소 포함)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5858개로 그 전 1년 동안 5.47%(339개)가 감소했습니다. 2019년에 57개가 문을 닫은 것과 비교하면 5배가 넘는 지점들이 한 해 사이 사라진 거죠.
특히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들은 2021년 9월말부터 작년 9월말 사이 254개의 점포를 줄였죠. 전체 20개 국내은행 중 4대 은행의 감축 점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70%인 셈이다. ▷관련기사: 코로나 2년새… 5대은행 점포 '열에 하나' 사라졌다(22년 3월30일)
은행들이 점포 수를 줄이는 이유는 인터넷과 모바일뱅킹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줄이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 이용 환경에 취약한 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죠. 지역 경제 활력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금융 관련 민간 연구단체인 금융경제연구소는 지난달 1일 '은행 영업점 축소 파급효과 분석과 은행권 대응 방안' 보고서를 발간했는데요. 여기엔 은행 점포 수가 1% 증가하면 지역내총생산은 0.31%, 신설법인 수는 0.73% 각각 늘어나지만, 반대로 은행 점포가 감소하면 그만큼 경제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담겼습니다.
강다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비대면 금융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지만, 노인뿐 아니라 20~30대 젊은 층도 여전히 대면 서비스를 더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은행 점포 폐쇄 속도가 빨라진다면 대면 서비스 약화에 따른 소비자 고충 등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축은행도 점포 줄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도 최근 지점을 줄여왔습니다. 속도가 은행 만큼 빠르지는 않지만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저축은행 79개사의 국내 점포 수(본점·지점·출장소·사무소 포함)는 287개로 1년 전(298개)보다 11개(3.69%) 감소했습니다.
저축은행이 점포를 축소하는 이유 역시 전반적으로 비대면 영업보다는 디지털 채널을 통한 영업을 확장하고 있어서입니다. 실제로 한 저축은행은 대출은 모두 비대면으로 시행하고 일부 수신 상품만 영업점을 통해 취급한답니다. 이 저축은행은 최근 들어 수신도 비대면으로 인한 유입이 더 많아졌다고 하네요.
하지만 저축은행은 출점에서부터 점포수 확대가 제한을 받아온 측면이 있어서 시중은행처럼 급속도로 점포 폐쇄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저축은행은 '영업 구역 제한'을 받거든요. 상호저축은행법에는 △서울 △인천·경기 △부산·울산·경남 △대전·충남·충북·세종 △대구·경북·강원 △광주·전남·전북·제주 등 6개 영업 구역을 나눠놓고 있죠.
이중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 저축은행은 50%, 나머지 권역 저축은행은 40% 이상을 영업권역 내에서만 대출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역을 벗어나서 영업하기가 까다롭다는 얘기입니다. 이 비율을 위반하면 임직원 해임이나 면직 등의 징계가 내려지기도 하죠.
또 자율적으로 점포 수를 늘릴 수 있는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의 경우 지점 이전이나 점포 설립 때 금융당국의 인가를 사전에 받아야 합니다. 10여년 전 '저축은행 사태'를 겪은 탓이죠.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과도한 외형 확장에 따른 부실 예방과 무분별한 점포 신설에 따른 과당경쟁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점포 줄이기를 제어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경우 점포 폐쇄는 저축은행중앙회에 신고 접수를 받고 있다"며 "은행처럼 폐쇄 절차를 강화하는 법제화 계획에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