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빚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정책을 펼친다.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차원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민간 금융회사의 희생을 감수한 동참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동안 불거진 '빚 탕감'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계부채 질 끌어올린다
정부는 4일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금융취약계층 혹은 서민의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을 내걸었다.
먼저 정부는 대환 대출시 변동금리 상품을 고정금리로 갈아탈 경우 수수료 경감을 추진한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5월 31일 현재 쓰고 있는 금융상품을 더 나은 조건의 다른 금융사 대출로 갈아 탈 수 있는 대환대출 비교 플랫폼을 내놓은 바 있다.
이 서비스는 출시 약 한달간 2만여건 가량(대출잔액 기준 5000억원 가량)이 신청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연간 100억원에 달하는 이자경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중이다.
다만 대출을 갈아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중도상환수수료로 인해 망설이는 대출차주들이 있다고 보고 수수료 경감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상 금융회사가 대출계약을 만기 이전에 종료하는 경우 금융소비자에게 부과하는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 잔액의 0.5~2.0%가량이다. 1000만원을 빌렸다면 최대 약 20만원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정부는 변동금리 대출 차주를 고정금리로 전환시켜 시장금리가 상승하더라도 빚을 갚아나가지 못하는 가계를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미 빚을 잘 갚지 못하고 있는 대출차주들을 위한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는 연체 위기자들을 대상으로 채무조정 특례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동안 청년층에만 적용되던 '신속채무조정 특례 프로그램'을 전 대출차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신용점수가 급격히 낮아졌거나 실직 등으로 빚을 잘 갚지 못하는 대출 차주의 경우 연체가 발생하기 전이라도 이자율을 약 30~50%가량 낮춰준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분할상환할 수 있는 기간을 10년 이내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여기에 더해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상환여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자 전액에 더해 원금 일부를 감면해 주는 방안도 추진될 계획이다.
금융취약계층이 고금리 시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정책금융상품의 제공 통로 역시 확대한다.
현재 공급되고 있는 정책서민금융 연간 공급 규모를 1조원 이상 확대한다. 또 핵심 정책금융상품인 햇살론중 온라인 근로자 햇살론은 전 상호금융권에서 취급하도록 하기로 했다. 온라인 근로자 햇살론의 경우 현재 신협에서만 취급하고 있다.
금융회사 부담 확대 불가피
대환대출시 중도상환수수료 경감이나 취약차주의 원금과 이자를 일부 면제해 주는 방안은 결국 금융회사가 일종의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경기가 어렵고 최근 '상생금융'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금융회사의 전적인 희생을 강요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이자장사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 비이자 이익중 하나인 수수료 수익 부분에서도 고통감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각종 수수료를 하나씩 없애기 시작하는 모습이라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에 대한 무료 인식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금융 취약계층의 채무조정 제도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이 제도는 민간 금융회사가 가지고 있는 대출채권을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한 이후 캠코를 중심으로 채무조정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캠코에 대출채권을 넘기게 된다. 즉 채무조정 제도가 확대될 수록 금융회사는 대출채권을 싸게 넘겨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현재도 가장 부실이 많이 발생하는 개인 무담보 대출의 채권은 민간 기업에는 매각할 수 없도록 돼 있어 대출 회수를 포기하면 수익성이 크게 하락한다"라며 "현재 제2금융권 회사들의 상황이 좋지 않은데 이러한 부분도 고려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2금융권의 부실채권을 민간에 매각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