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미국 뉴욕에서 기업설명회(IR)를 마치고 국내 업무에 복귀했다. 이 원장의 공식적인 이번 행사 목적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홍보다. K-파이낸스, 즉 한국 금융산업의 가치를 높이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해외 IR, 성과는 있었을까.
사실 지난해 두 차례 IR 이후 다시 뉴욕으로 떠날 채비를 꾸리자 금융권에선 쓴소리가 나왔다. 금융감독당국 수장이 피감기관인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금융사 CEO(최고경영자)들을 대동해 장시간 해외에 체류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었다. 한쪽에선 "외유성 출장", "관치금융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CEO들이 검사 출신 금감원장의 금융맨 변신을 위한 들러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이 원장 이전엔 금감원장이 직접 참석해 주도적으로 해외 IR 행사를 리드하는 경우가 없었다. 금융 정책을 주도하는 금융위원회와 검사·감시를 전담하는 금감원의 역할분담을 고려하면, 세재혜택 등 법 개정은 금융위 소관이다. 금융위원장 대행으로 나설 순 있지만 금감원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나 발언이 제한돼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글로벌 투자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계 은행 아시아 총괄 데스크는 IR행사에서 "세제 문제와 관련해 당국에서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인 점,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양방향 소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한 외국계 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는 "기업, 감독·정부기관 또 투자자들까지 모두 합심해 제 역할을 하는 국가적인 행사"라고 평가했다. 한 글로벌 투자자문사 애널리스트는 "주주환원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측면에서 개인적으론 KB금융지주에 투자하고 싶다"는 말까지 기자에게 건넸다.
행사 참가자들의 뻔한 '립 서비스' 였을까. 직후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는 평이 많다. 뉴욕 나스닥지수와 S&P 500지수 모두 또 다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는데, 우리나라 코스피는 찬물만 맞고 있다. 한국은행이 전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0.4%포인트나 끌어올렸는데도 요지부동이다. 해외투자자는 물론 국내 개미까지 국내 시장에서 발을 돌리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인공지능(AI) 산업같이 주가를 끌어올릴 대형주가 부족한 데다, 세제 개편 등 정책적 불확실성만 오히려 커졌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를 언급하자 대통령실이 이를 전면 부인하는 엇박자가 나며 혼선만 커지고 있다. 정책 불확실성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더 부각된 모양새다.
IR 현장에서 살펴 본 결과 결국 투자자들이 원하는 건 대책의 실효성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인 상장 기업들의 참여도 제고를 비롯해 법인세와 배당소득세 인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세제혜택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엔 투자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 상호 간의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한다.
IR 행사장에서 만난 한 헤지펀드 관계자는 "(행사에 참여한 당국이) 정확한 곳에서 문제를 짚고 있는 듯 했다"면서도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건 이같은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 적절한 타이밍에 정보를 공개하는 것, 안정적인고 시장친화적인 정책들"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행사가 빛을 보기 위해선 결국 이런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