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유통 공룡’. 중견그룹 지오영(GEO-YOUNG)에 딱 들어맞는 수식어다. 전국적으로 대형병원 50여곳과 약국 2만3000여개 중 60%가 넘는 곳에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으니 말 다했다. 지오영을 이렇듯 국내 1위 의약품 유통·물류 업체로만 안다면 당신은 지오영을 반쪽만 아는 것이다.
20년이 채 안된 짧은 기간 불같이 일어난 성장 뒤에 보상이 뒤따르지 않을 리 없다. 성장의 열매를 맛본 창업자들을 들춰보면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수천억 자산가로서의 면모, 개인기업들의 면면, 나아가 조용히 진행되는 대(代)물림에 이르기까지 얘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의약품 유통시장의 ‘포식자’
지오영그룹은 현 조선혜(67) 회장과 이희구(72) 명예회장이 의기투합해 2002년 5월 공동으로 설립한 의약품 유통 지주회사 ㈜지오영(옛 엑손팜)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SK 계열 SK네트웍스(당시 SK글로벌)가 가세했다.
다만 SK네트웍스가 2003년 발발한 분식회계 사태로 인해 이듬해 초 발을 빼면서 지오영은 사실상 조 회장과 이 명예회장 쌍두마차 체제로 성장해 왔다. 창업 훨씬 이전부터 의약품 도매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조 회장은 숙명여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학업을 마친 후 지방공사인 인천병원 약제과장으로 일하다가 이 명예회장이 1988년 11월 설립한 병원 의약품 납품업체 성창약품 대표로 1991년 자리를 옮기면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37살 때다. 이어 11년 뒤 지오영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 명예회장은 명지대 국문과 출신이다. 대학 졸업후 중학교 국어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1년만인 1974년 서울약품공업 계열 아세아양행에 입사, 제약업체 영업사원으로 직업을 갈아탔다. 1979년 대웅제약으로 옮겨 영업본부장 등을 지낸 뒤 38살 때인 1983년 1월 인천 동부약품을 인수, 독립하면서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3조7400억원. 지오영그룹 사업지주회사 ㈜지오영의 2020년 매출(연결기준)이다. 설립 이듬해인 2003년(1750억원)의 21배에 해당한다. 한 해도 뒷걸음질 친 적이 없다. 18년새 영업이익은 24억원에서 722억원으로 30배 뛰었다. 흑자를 놓친 적도 없다. 지오영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수치다.
초창기부터 전국의 중소 의약품 유통업체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 몸집을 불리는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 ‘포식자’라 할 만 하다. 현 계열사만 38개나 되는 배경이다. 인천 및 충남 천안에 허브물류센터를 보유하는 등 전국에 18개의 물류센터도 운영 중이다. 실탄은 넉넉했다. 벌이가 좋았고, 3번에 걸친 외부 투자자금도 뒤를 받쳤다.
22% vs 7%…창업자의 달라진 위상
지오영의 전국 유통 네트워크는 작년 2월 코로나19로 촉발된 ‘마스크 대란’으로 인해 특혜 논란을 빚으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던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가 약 5개월간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을 당시 시중 약국 대상 공적(公的) 마스크 독점적 공급권 준 2개 업체 중 한 곳으로 70%가량을 점유했던 곳이 지오영이다.
지오영 폭발 성장의 중심에 수레의 두 바퀴처럼 양대 창업자가 자리한다. 다만 세월이 제법 흘렀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는 게 세월이다. 현재 경영권력의 무게중심은 조 회장에게 쏠려있다.
조 회장은 ㈜지오영 창업 이래 대표이사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 반면 공동대표로 활동해온 이 명예회장은 2014년 6월 대표직을 내려놓고 지금은 이사회 멤버로만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게다가 조 회장은 지오영네트웍스 등 핵심 유통거점인 6개 계열사의 대표도 겸하고 있다. 소유 지분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지오영그룹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체제다. 2019년 5월 순수지주회사 ‘조선혜지와이홀딩스’ 설립에서 비롯됐다. 지주회사를 정점으로 주력사 ㈜지오영→지오영네트웍스(수도권), 강원지오영(강원), 대전지오영(충청), 영남·경남지오영(영남), 호남·남부지오영(호남), 제주지오영(제주) 등 전국 의약품 유통 계열사로 연결되는 수직지배체제다.
최상단에 3인주주가 위치한다.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 블랙스톤이 지분 71.25%로 1대주주지만 재무적투자자(FI)일 뿐이다. 경영권을 쥔 조 회장은 21.99%를 보유 중이다. 이외 6.76%가 이 회장 몫이다. 지주회사 출범 전 ㈜지오영의 초창기 45%를 공동소유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이제 조 회장의 수천억 자산가로서의 면모를 들춰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