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월, 삼천리그룹 두 동업 집안의 2세들은 부친들의 뒤를 이어 한 날 한 시에 나란히 회장에 취임했다. 한 해 전 부회장에 함께 오른 지 1년여만으로 37살, 34살 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삼천리 이씨 가(家)의 3대 승계는 신중모드다. 차기 회장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지만 경영권 대물림을 매듭짓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개연성이 없지 않다. 후발주자인 ST인터내셔널(옛 ㈜삼탄) 유씨 가와는 대조적이다.
3대 후계자 이은백 vs 유용욱 대조
㈜삼천리 계열 이씨 집안의 장손이자 유력 후계자인 이은백(51) 현 해외사업총괄 대표 사장은 미국 페퍼다인대 경영학과, 경영학석사(MBA) 출신이다. 31살 때인 2004년 ㈜삼천리에 입사,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2006년 6월 이사대우로 임원 타이틀을 단 뒤 2019년 12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반면 이 사장은 50살이 넘는 나이에도 여태껏 ㈜삼천리 이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2대 회장이자 삼촌인 이만득(68) 회장이 2003년 12월 대표에 이어 2016년 2월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지 8년이 넘었지만 전문경영인들로만 이사회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속전속결, ST인터내셔널 계열 유씨 일가와 대비된다. 유상덕(65) 회장의 두 아들 중 차남이자 후계 0순위인 유용욱(36·미국명 유로버트용욱) 경영기획실장의 경영 승계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장남과 비교해도 확연히 도드라진다. 유용훈(37)씨다. 현재 ST인터내셔널 계열에서 장남의 행보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뒤늦게 스타트를 끊은 데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유 실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출신이다. 삼정KPMG, 보스톤컨설팅그룹 등에서 근무한 뒤 ST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시기가 2018년이다. 하지만 이어 32살 때인 2020년 3월 이사회에 합류, 현재 부친과 함께 나란히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2020년은 유 실장이 이 사장과 함께 ㈜삼천리의 공동 단일 1대주주(현 지분 9.18%)로 올라서며 ST인터내셔널 3대 후계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시기다. 유 실장은 2022년 5월 ST인터내셔널이 인수한 벤처캐피탈 블루코너 사내이사이기도 하다.
매출 비중 0.6% 호텔·외식사업에 주력
뿐만 아니다. ㈜삼천리의 3대 회장 승계는 이 사장의 커리어를 보더라도 더디게 진행될 여지가 있다. 2010년 이후 주로 ㈜삼천리 신사업인 해외 호텔·외식사업에 주력하고 있어서다.
2010년 3월 해외사업 담당, 2014년 12월 미주본부장, 2022년 1월 미주총괄 대표를 거쳐 작년 말부터 해외사업총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3개 호텔 및 외식업체 지주사 SIM과 미국 외식사업 계열사 SCL L&C의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런 탓에 핵심 에너지사업에 대한 커리어가 부족하다. ㈜삼천리 본체가 주력으로 하는 도시가스 공급사업은 작년 ㈜삼천리 전체 매출(연결기준 5조6600억원) 중 68.5%(3조8000억원)를 차지할 정도로 주력 중의 주력이다.
상대적으로 미국 호텔․외식업은 규모 측면에서 ㈜삼천리 계열 전체를 이끌어 갈만한 사업은 아니다. 발전(17.9%), 자동차판매(7.4%), 플랜트(3.8%), 외식(1.5%), 집단에너지(0.9%)에 이어 0.6%(340억원)을 점하고 있다.
게다가 이 회장과 유 회장은 모두 60대로 오너경영인으로서는 아직 은퇴를 거론할 나이가 아니다. 아울러 자신들처럼 양가 후계자들에게 한 날 한 시 회장직을 물려주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면 유 실장의 경우는 30대 후반의 나이가 아직은 부담스럽다.
막내딸 이은선, 사내 등기임원 계열사 전무
㈜삼천리 후계구도의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는 이은선(42) ㈜삼천리 전무라고 다를 게 없다. 이 회장의 세 딸 중 3녀다. 이 사장의 두 여동생 이은아(49), 이은미(48)씨와 이 회장의 장녀 이은희(46), 차녀 이은남(45)씨와 달리 유일하게 경영에 발을 들인 3세녀다.
미국 UC 버클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28살 때인 2010년 삼천리에 과장으로 입사한 뒤 2014년 이사, 2017년 상무, 2020년 전무로 승진했다. 이 전무 또한 주로 신사업 분야에서 기량을 닦고 있다.
전략본부 신사업담당, 기획본부 기획1담당 등을 지낸 뒤 전무 승진과 함께 미래사업본부장, 신규사업본부장, 전략총괄 전략부문장을 거쳐 현재 미래사업총괄 본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삼천리 관계자는 “신규사업을 발굴하거나 중장기비전, 미래사업을 검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천리 뿐만 아니라 전 계열사를 통틀어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곳도 전혀 없다. 딱 한 군데 2021년 1월~2022년 2월 비상무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던 적은 있다. 삼천리ENG다.
이 전무가 외식사업에 손을 댔던 흔적이다. 삼천리ENG는 도시가스 배관공사 외에 외식부문(SL&C·삼천리 라이프 & 컬처)을 통해 중식당 차이797과 호우섬, 한식당 바른고기정육점과 서리재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삼천리 관계자 또한 “현 단계에서 3대 경영은 시기상조”라며 “내부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거나 얘기되고 있는 바도 없다”고 말했다. (▶ [거버넌스워치] 삼천리 ⑤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