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닝이 없었다면 우리는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성공의 주 요인으로 코닝을 꼽았다. 아이폰 개발 당시 스티브 잡스는 전면을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로 제작하길 원했다. 코닝은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고, 소재와 공정기술 혁신에 집중했다. 그 결과 두께 4mm 유리를 1.5mm로 줄인 고강도 유리를 만들어냈다.
◇ 왜 소재에 매달리나
소재·부품 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 소재·부품 산업은 수출 648억1000만달러, 수입 404억4000만달러를 기록해 무역흑자 244억4000만달러를 달성했다. 이는 전체 산업 수출(1383억달러)의 47%, 무역흑자(57억달러)의 4.3배 규모다.
▲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롭게 소재산업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기존 사업 영역으로는 충분한 혁신과 성장이 어렵고, 기술 개발에 투자하면 성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대표 건설사 중 하나인 대림산업은 최근 소재 분야 투자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현재 연산 14만톤 규모인 전남 여수의 폴리부텐(PB) 공장을 2016년 18만5000톤 규모로 증설할 예정이다. 석유화학 소재 부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함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소재 부문 매출은 전체의 15%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관련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높아진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한 몫 했다. 현대차는 이번에 공개한 신차 ‘인트라도’에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 및 고강성 설계 기술을 반영한 탄소섬유 차체를 적용했다. 높은 연비와 안전성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차량은 일반 차체와 강성은 비슷하지만 무게는 60%가량 가볍다.
▲ 현대자동차는 신차 '인트라도'의 차체의 소재로 롯데케미칼과 효성이 공동개발한 탄소섬유를 사용했다. |
◇ 소재산업에 뛰어든 기업들
최근 소재산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기업은 에쓰오일과 GS캍텍스, SK이노베이션 등 정유업체다. 정제 마진 하락과 과거에 진출했던 파라자일렌(PX) 가격이 공급과잉의 여파로 급락한 탓이다.
에쓰오일은 올해 초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석유화학기술센터 건립을 결정했다. 석유화학기반의 소재 사업 진출을 위한 것이다.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신소재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GS칼텍스는 첨단 기초소재 중 섬유·자동차 부품 소재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차전지용 음극재에 이어 양극재 생산도 준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부와 정보전자 소재사업본부를 통합해 소재산업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리튬이온분리막(LiBS) 등 정보전자 소재사업 분야에서도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 국내 정유업체 소재사업 현황(자료: 각사 취합) |
소재별로는 2차전지 소재가 눈에 띈다. 삼성SDI와 LG화학 등 주요 기업들이 적극적이다. 2차전지를 생산하는 삼성SDI는 지난 3월 소재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삼성SDI가 제일모직이 갖고 있는 배터리 분리막과 유·무기 화학 합성·배합·가공 등 기반기술을 토대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LG화학은 2차전지 완성품을 비롯해 전해액과 양극활물질, 분리막 등을 공급하고 있다.
또 포스코는 리튬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리튬은 대표적 2차전지인 리튬이온전지 핵심 소재로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포스코는 리튬을 추출하는 차별화 기술을 검증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중간시험용으로 파일럿 플랜트(Pilot Plant)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래핀(Graphene)’ 분야는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그래핀은 휘거나 비틀어도 깨지지 않아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원천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그래핀을 이용한 새로운 트랜지스터 구조를 찾아냈으며 삼성테크윈도 정부의 그래핀 소재 부품 기술개발 신규 사업자로 선정돼 올초 서울대 연구진과 그래핀 필름 대량생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효성과 코오롱 등은 화학섬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효성은 2006년부터 탄소섬유 사업에 뛰어들어 지난해 말 세계 최초로 고분자 신소재 ‘폴리케톤’ 개발에 성공했다. 폴리케톤은 충격강도가 나일론보다 2.3배, 내화학성은 30% 이상 우수하고 내마모성은 폴리아세탈(POM)보다 14배 이상 좋아 활용도가 높다.
코오롱은 섬유와 IT기술을 접목한 신소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코오롱글로텍은 국내 최초로 섬유에 전자회로를 인쇄, 전류를 흐르게 하는 전자섬유를 상용화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아라미드 기술 침해 관련 소송에서 승리, 위축됐던 소재분야에 대한 신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 주요 소재별 진출 기업 사업현황(자료: 각사 취합) |
◇ ‘중국을 경계하라'..고(高)기술 육성 필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각 소재 간의 분류도 의미가 없어졌다. 유기와 무기, 금속, 바이오가 아닌 하나의 소재 시장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경쟁자뿐만 아니라 새롭게 뛰어드는 경쟁자들이 늘고 있다.
이윤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 가지 기술로는 고객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어려워 이종 기술과 결합된 혁신 소재로 진화할 것”이라며 “소재기업들의 기술 발전으로 소재시장이 더욱 커지겠지만 경쟁도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의 소재 산업은 선진국 중심으로 높은 수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대일본 수입의존도(18.1%)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희망적이다. 하지만 또 다른 경쟁자가 등장했다. 바로 중국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한국의 대 중국 소재산업 무역특화지수를 분석한 결과, 지난 13년 동안 대(對) 중국 무역특화지수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 자료:현대경제연구원. |
무역특화지수는 한 상품의 전체 무역액을 이용해 상품의 비교우위를 나타내는 지표다. 지수가 1이면 수입은 전혀 없고 수출만 하는 것으로 수출특화상태를 뜻한다. 지수가 0이면 비교우위는 중간정도로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중국에 비교우위에 있지만 그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중국은 2020년까지 주요 신소재 자급률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능성 소재, 고성능 복합 소재 등 혁신 능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부가가치 소재기술 발굴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소재 산업별로 국내개발과 해외기술 도입이 필요한 분야를 선별해 장기적인 소재산업 발전 로드맵을 점검해야 한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보다 기술 분야의 경쟁력은 앞서고 있지만 가격경쟁력은 뒤처지고 있어 고기술, 중고기술 분야에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며 “한중 간 기술협력으로 차별화된 차세대 신소재 기술 등 각국 수요에 맞는 기술 개발 확대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