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산업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년 전부터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바이오 산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람의 수명이 증가하면 그에 따른 질병도 함께 늘어난다. 질병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는 인류의 숙제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상태다. 오는 2018년이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고 있는 나라다. 국내 기업들이 바이오 산업 육성에 주력하는 이유다.
바이오산업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의약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의약 바이오' ▲식물체를 원료로 화학제품을 만드는 '산업 바이오' ▲정보기술(IT)과 융합해 유전체를 분석하고 다양한 질환 예측을 돕는 '융합 바이오' 등이다.
이중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융합 바이오'다. 국내 IT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IT기술과 바이오 분야와의 접목은 전세계 바이오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 자료:식품의약품안전처. |
시장 전망도 밝다. 업계 등에 따르면 세계 의료기기 산업 시장은 지난 2012년 350조원에서 오는 2018년 520조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도 최근 관계부처 합동으로 국내 의료산업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의 목표는 오는 2020년까지 국내 의료기기 산업 수출액 13조5000억원, 세계시장 점유율 3.8%, GDP 대비 생산규모 1.0%를 달성하는 것이다.
◇ 삼성, 의료사업에 올인
"삼성은 현재 의료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연구개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4월 보아오포럼에서 향후 삼성의 신성장동력으로 의료분야, 즉 의료기기 분야를 지목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강점인 IT·모바일 기술이 의료·헬스케어와 접목될 경우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이 이처럼 의료기기 분야에 방점을 찍는 것은 그만큼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서다. 삼성은 오는 2020년까지 의료기기와 헬스케어 사업에 총 1조2000억원을 투입, 연매출 10조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 삼성메디슨이 개발한 초음파 기기 |
삼성은 신사업을 선정할 때 '해당 시장에서 삼성 제품을 1억개 이상 판매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의료기기 사업은 이런 기준을 통과한 사업이다. 삼성의 구상은 '스마트폰·갤럭시탭·컴퓨터→의료기기'다. 삼성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IT기술 기반이다.
IT 휴대기기를 의료기기와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의료와 ICT의 융합'이 삼성의 관심사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5'에 심박을 체크할 수 있는 심박센서를 탑재했다. '갤럭시 기어 피트'와 연동해 건강과 운동을 기록관리할 수 있는 웨어러블 헬스기기도 개발했다.
삼성의 바이오 부문에 대한 투자는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의료기기 사업과 바이오 시밀러 사업이다. 의료기기는 삼성메디슨이,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담당한다. 전사적인 시너지를 내기 위한 작업도 활발하다. 삼성그룹은 병원 패키지 수출사업을 추진 중이다. 삼성물산 상사부문이 수주·자금 조달·의료 장비 구매 등 병원 패키지 수출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건설 부문은 병원 건립을, 삼성전자는 일부 의료 장비를 생산한다. 삼성SDS는 의료 관련 전산 시스템 구축을 담당하고 삼성서울병원은 현지 의료진 교육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 LG, U-헬스케어에 눈독
국내 여타 대기업들도 바이오 산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삼성처럼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바이오 헬스케어라는 큰 틀 안에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LG그룹의 경우 LG생명과학이 바이오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특허가 만료된 약품의 복제약)부문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LG생명과학의 바이오시밀러 분야의 R&D 능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아울러 그룹의 근간인 전자와의 융합을 통한 'U-헬스케어'도 LG그룹이 눈독을 들이는 부문이다. 최근 LG전자가 선보인 '라이프밴드 터치'와 '심박동 이어폰'이 대표적이다. 라이프밴드 터치는 신체 활동량을 측정하는 손목 밴드 형태의 기기다. 사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해 칼로리 소모량과 걸음 수, 이동 거리 등을 체크한다.
▲ LG전자가 선보인 '라이프밴드 터치'. 라이프밴드 터치는 신체 활동량을 측정하는 손목 밴드 형태의 기기다. 사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해 칼로리 소모량과 걸음 수, 움직인 거리 등을 체크한다. |
심박동 이어폰은 라이프밴드 터치와 연동이 가능한 기기다. 운동하면서 음악을 들으며 이어폰으로 심박동을 잴 수 있다.
SK그룹은 바이오헬스케어 사업 강화를 목적으로 신약 사업을 담당할 SK바이오팜을 분사했다. SK텔레콤은 U-헬스케어를 담당할 헬스케어 사업부문을 신설했다. SK건설은 연세의료원과 디지털병원 수출 협약을, SK텔레콤은 서울대병원과 헬스케어 합작회사 설립 계약을 맺었다.
한화그룹과 CJ그룹도 바이오시밀러를 중심으로 바이오 사업을 키우고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케미칼을 통해 글로벌 제약업체 화이자의 TNF-알파억제제인 엔브렐(류마티스 관절염, 성분명 에타너셉트)의 바이오시밀러 개발, 허가를 앞두고 있다.
CJ그룹의 경우 지난 4월 CJ제일제당 산하 제약사업부를 CJ헬스케어로 독립시켰다. 오는 2020년까지 매출 1조원을 이루겠다는 목표다. CJ헬스케어는 매년 순환기와 내분비 관련 치료제를 출시할 계획이다. 현재 위산 억제 개량신약과 바이오시밀러 출시를 위한 임상실험 중이다.
◇ 국내 바이오 산업, 숙제는?
국내 기업들에게 '장밋빛 미래'로 각광 받고 있는 바이오 산업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해 실효성 있는 제품 개발이 쉽지 않다. 바이오 부문은 연구·개발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데 규모가 영세하면 자금 유치가 어렵다. 기술과 자본이 결합돼야 시너지가 난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미미하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한국 의약품 시장 규모는 세계 15위다.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의료기기 부문의 비중은 1.6%로 11위다. 1위인 미국(의약품 34.9%, 의료기기 38.5%)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작년 기준 우리 정부의 바이오 부문 투자액은 약 2조원 규모다. 이는 미국의 7분의 1 수준이다. 업계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 인허가 등 행정절차가 일원화 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신기술을 개발해 정부에 허가를 신청했지만 각 부처별로 따로 심사하는 바람에 허가를 받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약품 허가를 받으려면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예산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심사해 결정한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예산지원은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허가 절차도 '옥상옥'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바이오 산업이 한국의 차세대 산업으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