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값이 4년 만에 1700원 대로 떨어졌다. 원유의 공급과잉과 미국 달러화의 강세가 겹치며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서다.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전국 주유소 보통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ℓ) 당 1795.18원이다. 자동차용 경유는 리터 당 1599.44원이다.
휘발유 값은 지난 2010년 12월 이후 4년여 만에 1700원대로 내려왔다. 최근 3년 동안 가격이 가장 높았던 2012년 4월 평균인 2058.68원과 비교하면 263.5원 떨어졌다. 같은 기간 경유는 266.12원 하락해 휘발유보다 낙폭이 더 컸다.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원유가격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국제석유시장에서 원유가격이 하락하자 석유제품 가격도 떨어지는 것이다. 지난 1월 배럴 당 104.01달러를 기록했던 두바이유 가격은 9월 기준 96.64달러로 7.37달러 하락했다.
이는 국제시장에서 원유 공급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의 주요 생산지인 중동에선 이라크 사태에도 불구하고 원유가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셰일 붐에 힘입어 자체 원유 생산량을 늘리고 수입량은 줄이고 있다.
◇ 공급 느는 데다 강(强)달러 영향 맞물려
또 미국의 경기회복과 양적완화 축소 예고 등으로 달러화 가치가 치솟으면서 유가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원유 가격은 달러로 표시된다.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면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 입장에선 같은 양의 원유를 예전보다 더 비싼 값에 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원유의 수요 감소로 이어져 원유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반면 달러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오를 경우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상승한다. 정유사들이 예전보다 비싼 값에 원유를 사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환율의 상승세보다 국제유가 하락세가 더 강하다. 국내 시장에서 석유제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다.
문영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석유제품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지만 지금은 국제유가의 하락폭이 더 커 휘발유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당분간 국제유가는 하락세가 지속될 전망이라 국내 휘발유 가격은 원·달러 환율의 상승 폭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 잠잠해진 중동 지역에서 국제유가를 뒤흔들만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석유제품 가격의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국내 시장에서 휘발유 가격도 당분간 1700원 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휘발유 가격 절반이 세금…‘역전현상’
휘발유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정유사들이 국제유가 하락에 맞춰 제품 공급가격을 낮추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의 휘발유 세전 공급가격은 7월 첫째주 리터 당 852.34원에서 9월 넷째주 774.46원으로 77.88원 하락했다.
정유사들의 공급 가격이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에게 적용되는 제품가격의 절반 이상을 세금이 차지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올해 1~8월 보통 휘발유 1리터에 부과된 세금 총액은 962.27원으로 집계됐다.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주행세 등 각종 세금이 포함된 값이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정유사들의 세전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 당 899.87원이었다.
이로 인해 정유사들의 시름은 깊어지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체감도는 낮은 상황이다. 실제 기름값이 비쌌던 2012년 4월 정유사가 공급한 휘발유 세전가격은 리터 당 1039.27원이었다. 올해 9월에는 780.61원으로 25%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세금이 포함된 주유소 공급 가격은 리터 당 2058.68원에서 1814.20원으로 하락, 12% 떨어지는데 그쳤다.
국내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정유사업에서 적자를 지속할 만큼 낮은 가격에 석유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며 “하지만 세금 구조의 문제로 인해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가격 하락폭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