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이번 정기인사에서 과감한 교체카드를 꺼냈다. 최태원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체제로는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결과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에 새로운 얼굴들이 배치됐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와 학교 동문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이번 정기인사가 세대교체와 함께 최태원 회장의 친정체제를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 주력 계열사 CEO '물갈이'
SK는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 C&C 등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들을 교체했다.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이라는 주력사업이 부진했던 결과다.
SK이노베이션 사장에 정철길 SK C&C 사장, SK텔레콤 사장에는 장동현 SK플래닛 COO, SK네트웍스에는 문종훈 수펙스추구협의회 통합사무국장, SK C&C 사장에는 박정호 Corporate Development장이 각각 이동, 승진 보임됐다. SK에너지는 정철길 이노베이션 사장이 겸직한다.
정철길 사장은 국내사업 위주였던 SK C&C를 글로벌 사업구조로 바꾸고 기업가치를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SK이노베이션이 구조적 위기에 빠져 있는 만큼 이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장동현 SK텔레콤 사장의 기용은 과감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동현 사장은 1963년생으로 전임 하성민 사장이 57년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젊은 피'로 평가받는다. 장 사장은 SK텔레콤내에서 대표적인 전략·기획통으로 평가받는 만큼 앞으로 과감한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장 사장은 창조경제혁신추진단장도 맡게 된다.
문종훈 SK네트웍스 사장은 SK M&C와 워커힐 사장 경험을 살려 SK네트웍스의 경영정상화를 마무리하고 사업모델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게 된다.
정철길 사장의 뒤를 잇는 박정호 SK C&C 사장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SK C&C가 사실상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인 만큼 오너일가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평가다. 박정호 사장 역시 1963년생이다.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도 변화가 생겼다. 김창근 의장이 연임했고,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인 김영태 사장이 유임된 반면 다른 위원장들은 교체됐다.
전략위원장은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글로벌성장위원장은 유정준 SK E&S 사장이 맡고, 윤리경영위원장에는 하성민 전 SK텔레콤 사장이 자리를 이동했다. 동반성장위원장에는 현 동반성장위원회 상임위원인 이문석 사장이 맡고, 통합사무국장에는 지동섭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이 임명됐다.
◇최태원 회장 측근·동문 '약진'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측근과 동문인사들이 약진했다는 평가다.
1954년생인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SK C&C의 기업가치를 높인 공로를 인정받으며 다시 한번 신임을 받았다. 최태원 회장이 SK C&C 지분 32.92%를 바탕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기업가치 상승은 곧 최 회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 사장의 후임인 박정호 SK C&C 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최 회장과 대학 동문이다. 최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굵직한 인수합병에 관여해왔다. SK하이닉스 인수전에도 참여했으며 유정준 SK E&S 사장과 함께 과거 '소버린 사태'때 핵심 참모로 최 회장을 보좌했다.
문종훈 SK네트웍스 사장도 고려대 출신으로 역시 대학 동문이다. 최근까지 수펙스추구협의회 통합사무국장 겸 전략팀장을 맡으며 그룹 경영에 참여해 왔다.
그밖에 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 이형희 SK텔레콤 부사장 등도 최 회장의 동문이다. 이인찬 사장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출신으로 2006년 SK에 합류한 인물이다. 이형희 부사장은 최 회장과 신일고, 고려대 동문으로 이번 인사에서 이동통신사업(MNO) 총괄 겸 기업솔루션부문장을 맡아 앞으로 핵심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SK그룹 인사는 세대교체와 함께 최태원 회장의 친정체제가 더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최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만큼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를 전진배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