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의 악몽이 재연될까.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과거 헤르메스 펀드의 사례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앨리엇매니지먼트는 4일 삼성물산 지분 1112만5927주를 주당 6만3500원에 취득했다고 신고했다. 지분매입에 사용된 금액은 7000억원을 웃돈다. 엘리엇은 주식보유사실을 신고하며 보유목적을 '경영참여'로 못박았다.
◇ 엘리엇, 앞으로 행보는?
삼성SDI 등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보유한 지분은 약 14% 수준. 앞으로 엘리엇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아직 예상하기 어렵지만 보유지분을 근거로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요구하거나 주주총회 제안 등이 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엘리엇이 이날 별도 자료를 통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사실상 반대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앞으로 적지않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주주 결집 등을 통해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주도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삼성물산 주가가 6만원 후반대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인 5만7234원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엘리엇이 과거 헤르메스처럼 시세차익을 노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4년 헤르메스 펀드는 삼성물산 지분 5%를 매입한 후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삼성측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헤르메스는 돌연 보유지분을 청산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헤르메스는 약 3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 소버린·아이칸 등도 먹튀
헤르메스 펀드 외에 SK그룹과 연관된 소버린, KT&G 지분매입에 나섰던 아이칸 등도 대표적인 먹튀 사례다.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끌어올린 후 이를 처분해 차익을 챙겼다.
소버린자산운용은 지난 2003년 SK(주) 지분 14.99%를 매입해 2대주주에 오른 후 그룹 경영에 개입했다.
당시 소버린은 계열사 청산과 경영진 교체 등을 요구했다. SK는 백기사들을 동원해 어렵게 경영권을 방어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버린은 약 90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다.
2006년 KT&G 지분을 인수했던 칼 아이칸도 비슷한 사례다. 당시 칼 아이칸은 다른 펀드인 스틸파트너스와 연합해 KT&G 지분 6.59%를 매입했다.
이후 사외이사 1명을 통해 자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등 경영에 개입했다. KT&G 역시 국민연금의 지원을 통해 경영권을 지켰지만 칼 아이칸은 1500억원의 차익을 냈다.
일단 삼성물산은 가급적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삼성물산은 이날 엘리엇의 지분매입에 대해 "다양한 주주들과 소통하며 기업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