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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화학 ABC]③트럼프의 빨대…'네 안에 나 있다'

  • 2019.12.12(목) 08:10

'석유화학의 쌀' 에틸렌, 기초유분의 한 종류
플라스틱에서 비닐봉지까지 다양한 쓰임새

원유는 '검은 황금'이라 불린다. 자동차 연료에서부터 플라스틱·옷감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여러 방면에 쓰인다. 하루 9000만배럴 가량이 소비되는 원유의 가치는 상상 그 이상이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지분 1.5% 공모주 청약에 443억달러(약 52조3000억원)가 몰린 것도 원유의 '금색 값어치'에 대한 세간의 믿음을 보여준다. 땅속, 바다 깊은 곳에 묻혀있는 원유에 대한 기초지식과 그 쓰임새를 국내 산업과 연관해 구석구석 살펴본다.[편집자주]

'빨대를 다시 위대하게(Make straws great again).'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지지자들에게 보낸 전자메일 제목에 적힌 문구다. 메일 속에는 트럼프 지지호소 글과 함께 '트럼프(TRUMP)' 회색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 플라스틱 빨대 판매 소식이 담겼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플라스틱 빨대 퇴출 요구'를 골자로 한 '종이 빨대 사용운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듯 제품 소개란에는 "진보적 종이 빨대는 쓸모가 없다"는 조롱섞인 문구가 적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구호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와 그가 일전에 "집중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다들 빨대에만 초점을 둔다"고 말한 것에 착안한 '맞춤형 판매 전략'이다.

환경주의자를 필두로 한 진보주의자, 트럼프 대통령을 위시한 보수주의자의 격전지 빨대는 '원산지' 화학업계에서도 꽤나 주목하는 제품이다. 빨대는 만들기는 매우 간편하면서도 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찾는 손이 꾸준히 보장돼서다.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이어 인구 13억7000만의 인도 사람들이 커피 맛을 깨우칠 날이 올 것"이라며 폭발적 사업확장 기대감을 빨대에 빗대 표현했다. 정치권과 산업계를 울고 웃게 만드는 빨대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성분이 오늘 소개할 에틸렌이다.

일명 '트럼프 빨대' 상품 판매란./출처=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선거캠프 상품 판매 홈페이지 갈무리

◇ 간소해 생활 '구석구석'

에틸렌은 기체 상태 물질이다. 원유를 정제해 뽑은 나프타를 나프타 분해설비(NCC)에 넣어 열분해, 급냉, 압축, 정제 4단계를 거치면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화학제품에 꼭 필요한 기초유분과 함께 톡 튀어나온다. 통상 나프타를 분해하면 에틸렌이 31%로 생산비율이 가장 높고 프로필렌이 16%, 부타디엔이 10%로 뒤를 잇는다. 원유를 정제하면 나오는 수소, 액화석유가스(LPG) 등도 일부 추출된다.

에틸렌은 기초유분 가운데 이곳저곳에 가장 많이 쓰여 '화학산업의 쌀'로 불린다. 사람이 쌀을 쪄 만든 밥을 먹어야 살듯이, 화학산업도 에틸렌 덕에 여러 제품을 만들어 돈을 번다. 가공을 거치면 고체상태 쌀알 모양으로 변하는 것도 에틸렌의 이같은 호칭에 한몫한다.

폴리에틸렌 외관/출처=한화케미칼 블로그 '케미드림' 갈무리

간단한 분자구조도 에틸렌이 '팔방미인'이 되는데 기여한다. 에틸렌은 2개의 탄소 각각에 수소 2개씩이 달린 이른바 '이중결합' 구조다. 탄소와 탄소가 다른 원자를 끼고 결합한 알켄 또는 올레핀류 중 가장 단순한 형태다. 여기에 곁가지 성분을 레고처럼 더 끼워넣거나 빼면 다양한 화학물질로 변신할 수 있다.

4대 플라스틱이라 불리는 폴리에틸렌, 폴리염화비닐, 폴리스티렌, 폴리프로필렌 모두에 에틸렌이 빠지지 않는다. 이들 제품은 빨대는 물론 필름, 페트병, 1회용 컵, 합성섬유 등 생활용품에서 자동차 부품, 전선 피복, 파이프 등 공업용품에서 감초 역할을 맡는다.

폴리에틸렌은 에틸렌 생산량의 50% 이상이 쓰이는 인기 품목이다. 에틸렌 밀도를 높이면 성분이 빽빽해져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이 만들어진다. 도시락 용기, 장난감 등 단단한 제품에 쓰인다. 에틸렌 밀도를 낮추면 반대로 말랑말랑한 비닐봉투·랩 등에 쓰이는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에틸렌을 성기게 엮으면 속이 투명하기까지 한 필름용 초저밀도 폴리에틸렌(LLDPE)가 만들어진다.

국내 화학업계도 에틸렌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국내 업계의 에틸렌 연간 생산능력은 총 979만5000톤으로 기초유분 가운데 가장 많다. 그 뒤를 프로필렌(957만톤), 벤젠(715만1000톤), 자일렌(394만톤), 톨루엔 (213만6000톤), 부타디엔(140만7000톤)이 따른다. 지난해 국내 에틸렌 생산량은 총 926만톤으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생산량의 절반 이상인 55%가 수출돼 에틸렌은 효자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에틸렌 밀도별 폴리에틸렌 종류/출처=한화토탈 블로그 갈무리

◇ 미국과 중국이 '온다'

에틸렌은 북미 대륙을 중심으로 지각변동을 맞고 있다. 셰일혁명을 딛고 저렴한 원료를 무기로 미국 화학사들이 실력발휘에 나섰다. 땅속 깊은 곳에 묻힌 퇴적층 셰일에서 천연가스를 캐내 가공한 에탄이 현지 기업의 무기다. 에탄은 나프타를 쓸 때보다 많게는 절반 가까이 원료비가 저렴해 기업들의 폭발적 생산량을 뒷받침한다. 미국 화학사들은 올해 에탄 분해설비(ECC) 가동률이 100%에 육박한 적도 있으며, 신·증설을 이어가는 중이다.

시장은 충격을 흡수하지 못했다. 에틸렌 가격은 지난해 7월 톤당 1386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이어가 올해 12월 들어 반토막 가까이 난 771달러로 꺾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9년 이래 10년새 최저 수준이 눈앞이다. ECC의 경우 에틸렌계 생산비율이 71%로 NCC(31%)의 약 두배 이상 높은 것이 공급과잉을 부추겼다.

앞으로 전망도 마냥 화창하지만은 않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앞으로 2023년까지 연평균 세계 에틸렌 공급 증가율은 4.6%로 수요 증가율(3.8%)을 앞지를 전망이다. 당장 미국이 이 기간 1000만톤을 쏟아내 전체 물량의 25%를 담당한다. 화학산업 자급자족을 꿈꾸는 중국에서도 설비 신·증설로 1000만톤 초중반대 물량이 추가로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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