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정유화학 ABC]④기름 한방울 안나는 '석화 강국'

  • 2019.12.17(화) 16:10

1964년 유공 가동…정유화학 역사 기지개
구조조정 아픔 거쳐…반도체 더불어 '수출효자'

국내 정유·화학 산업은 그야말로 맨 땅에서 시작됐다. 대규모 플랜트 설비 건설 경험이 전무한 국내 기술진, 빈약하디 못해 고갈 직전인 나라곳간은 첫 단계인 정유탑을 쌓기에도 버거웠다. 부족한 자금을 외부에서 끌어들이려 정부 관계자들이 사방을 수소문했지만, 여러 국제 기업들이 손사래를 쳤다. 전쟁이 끝난지 10년이채 지나지 않아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는 한반도에 뭉칫돈을 투자하고픈 이는 드물었다.

한국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정부 주도로 기어코 공장을 올렸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척박한 땅 위에 1960년대 최초의 정유공장을 시작으로 10년 뒤 나프타 분해설비(NCC)까지 차례로 지었다. 세계 30위권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산유국 몽골이 2015년에야 정유설비를 짓기 시작한 것과 비교해 최소 50여년이 앞섰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NCC 상업생산일 기준 일본에 15년, 미국・유럽에 20~30여년 고작 뒤진다. 전쟁을 겪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에 중화학 공업의 싹은 그렇게 텄다.

◇ 진구렁속 '무조건 직진'

1964년 대한석유공사 울산 정유공장 준공식/사진=SK이노베이션 전문 보도채널 스키노뉴스 갈무리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국가 주도 경제발전 계획과 궤를 같이 한다.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다음해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내놓는다. 주요 뼈대는 만성적으로 부족한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원조기관 등을 통해 석유가 들어왔지만, 제품공급이 간간히 중단되는 등 수급이 불안정했다. 부족한 석유를 직접 돈을 주고 수입하는 경우에도 외화 유출로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를 초래했다.

결국 자체 정유공장 건설은 직접 원유에서 석유를 뽑아내 석유 공급망 안정, 무역수지 흑자전환을 통한 경제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이었다.

정부는 계획 첫 걸음부터 보폭을 크게 딛으려 했다. 공장을 돌릴 등유 등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대한석유공사(유공)를 100% 국내 자본으로 짓는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석유가 샘솟는 중동 산유국들이 기술, 자본금 부족으로 단순히 원유를 '소유하는 자'에서 '채굴해 파는 자'로 바뀌기까지 최소 30년 이상이 걸린 것과 비교해도 무척 빠른 계획안이다.

일례로 중동 석유 부호 사우디에서 땅속 원유를 뽑아내고 정제해 파는 권리를 독점한 국영회사 아람코가 1980년 완전 국유화되기까지 47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원대한 계획은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정유탑을 쌓아본 인력이 부족한 것은 둘째치고 곧바로 자금난에 직면했다. 1962년 정부예산이 당시 돈으로 700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3.6%인 25억원을 오롯이 유공에 투자해야 했다. 비료공장 등 기타 공업육성에 쓸 돈이 넘쳐났던 정부 입장에서 외국계 자본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손을 들었다. 당시 미국 석유회사 걸프오일로부터 차관 제공 등 자금수혈을 약속 받고 유공 지분을 50대 50으로 나누기로 합의했다. 이윽고 유공은 1964년 하루 정제량 3만5000배럴규모 설비를 울산에 가동했다. '대한민국 금융잔혹사'란 책에 따르면 최덕빈 전 유공 업무부장은 "(한국에 꼭 진출하겠다는 미국 걸프사의) 그런 입장이, 다른 메이저들은 감히 발을 들여놓기 싫어하는 진구렁(질척거리는 진흙 구렁)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게 한 요인"이라고 평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유공은 대한민국 산업발전에 든든한 뒷배가 됐다. 철강, 석유화학 등 기계산업 육성전략을 담은 1966년 발표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서 연료공급이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또 날로 국내 수요가 급증한 경공업 부문의 핵심소재 나일론과 신발 등 석유제품 원료까지 공급했다. 그 잉여분은 외국에 팔려 외화까지 끌어왔다. 유공은 원유 정제 설비능력 확충에 더해 1970년 방향족, 1973년 NCC 설비를 가동하며 대한민국이 석유화학 강국으로 가는 발판을 닦았다.

◇ 정유와 화학, '더 밀집하자'

국내 석유화학단지 현황/사진=한국석유화학협회 미니북 갈무리

유공외 다른 주역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정부는 나날이 늘어가는 석유수요를 감안해 민간 기업의 정유사업 진출을 허가해 경인에너지(현 SK인천석유화학),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쌍용정유(S-OIL), 극동정유(현 현대오일뱅크)가 설립된다.

유공이 위치한 지역은 정유·화학 심장부로 탈바꿈했다. 정부는 여러 민간 기업들과 협의를 통해 화학사를 한데 그러모을 수 있는 울산석유화학단지를 1968년 착공해 1972년 완공했다. 이미 1947년 설립된 LG그룹 모태 락희화학공업사 등 화학사 등이 여럿 있었지만, 듬성듬성 떨어져 분포해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기 어려워서다.

화학산업은 연관 회사를 밀집시키고, 대량으로 제품을 뽑아내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싼 석유로부터 연료를 뽑아내야 하는데서 비롯된 높은 원료비, 부피가 큰 원료와 빈번한 물동량으로 빚어진 많은 운임비를 최대한 줄여야 수익성이 보전된다.

석유화학단지에는 공기업 호남비료 산하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 대한유화, 동서석유화학, 한국카프로람탁(현 카프로), 한국합성고무(현 금호석유화학), 이수화학, 삼경화성(현 애경유화) 등이 모여 유공으로부터 원료를 받아 여러 화학제품을 24시간 내내 생산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화학기초원료에서 파라자일렌 등 중간원료, 비닐봉투를 포함한 최종재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것은 아시아에서 일본, 대만에 이어 세 번째다.

정부는 여세를 몰아 1979년 전라남도에 여천(현 여수)국가산업단지를 세웠다. 이 과정에 정부는 호남비료와 합병해 한국종합화학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충남비료를 민영화하는 작업을 거쳐 산하 회사를 민간에 팔았다. 재원이 비교적 풍부한 민간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호남에틸렌(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등이 민간에 팔렸다. 당시 유공은 후일 정부가 걸프사로부터 지분을 매입한 이래 1980년 합성섬유가 주력이던 선경그룹(현 SK그룹)에 지분이 전량 매각된다. 본격적으로 민간 기업이 정유·화학 시장을 주도한 것이다.

정부는 투자촉진 차원에서 기존 민간기업이 신규 사업자로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기에 이른다. 삼성과 현대가 삼성종합화학, 현대석유화학이란 회사명을 필두로 석유화학 분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규제완화는 1991년 충청남도에 세워진 대산 석유화학단지가 민간 주도로 설립되는데 자양분이 된다.

◇ '찢고 붙이고'...위기속 변화

여러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며 발생한 걸프전이 대표적이다. 경기침체로 수요는 줄고, 유가가 치솟아 원료비는 급등하는 이중고가 업계를 옥죘다.

하지만 더 큰 호재가 기름집을 살렸다. 다행히 1992년 한중수교로 인한 새로운 수요처 발굴, 글로벌 경기 회복세란 겹경사를 맞아 화학업계의 곳간은 두둑해졌다. 정유·화학사들은 넘쳐나는 돈을 시설투자에 쏟아 부었다.

다만 좋은 시절은 오래 못갔다. 재계서열 2위 대우그룹을 집어삼킨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광풍은 정유화학업계에도 도달했다.

IMF에서 외화를 조달한 대가로 정부는 시중금리를 15%에서 30%대로 약 두배 높이고, 긴축재정을 편성하는 등 강도 높은 산업 솎아내기에 나섰다. 설비를 신증설하기 위해 빌린 돈이 많았던 정유화학 업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금융비용에 직면했다. 주요 고객인 아시아 각국이 제품구매에 손 사래를 쳐 곳간은 매말라갔다.

정유화학 업계는 제각각의 방법으로 위기탈출에 나섰다.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은 일부 사업부문을 매각해 현금을 긁어 모았다. 삼성종합화학은 프랑스 토탈사와 손잡고 합작 법인 삼성토탈을 지어 외부 자금을 수혈했다. 에틸렌 공급과잉 해소 차원에서 대림과 한화가 해당 설비를 합치거나, 서로간 필요한 사업을 교환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쌍용정유, 현대석유화학 등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돼 다른 기업에 팔려간 업체도 나왔다.

이후 삼성이 2014년, 2015년 한화와 롯데에 화학부문을 매각하는 '빅딜'을 거치며 현재 정유화학 업계 지형도가 형성됐다.

◇ 반도체와 '쌍두마차'

정유·화학에 힘입어 한국은 수출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의 지난해 연간 정유와 화학제품 수출액은 총 968억달러다. 정유와 화학은 한국 총 수출액 6054억달러 가운데 16%를 담당했다. 기름에서 나온 두 제품이 1등 수출품목인 반도체 1267억달러 다음으로 많은 외화를 국내에 끌어왔다. 한 국가가 연간 총 수출액 6000억달러를 달성한 것은 세계 일곱 번째 사례다.

구체적으로 정유제품이 467억달러, 화학제품이 500억달러를 해외에서 벌었다. 이중 화학제품이 5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비결은 꾸준히 진행된 규모의 경제다.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륨(BP)에 따르면 한국이 하루 동안 처리할 수 있는 원유 정제량은 334만6000배럴로 세계 5위 수준이다. 상위권은 미국, 중국 , 러시아, 인도로 모두 원유 매장량이 세계 30위권에 드는 석유 강국이다.

'석유화학의 쌀' 에틸렌 연간 생산능력은 지난해말 기준 총 926만톤으로 미국, 중국, 사우디의 뒤를 이어 세계 4위에 안착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던 국가가 기름제품 강국으로 우뚝 섰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이 옆에 있어 한국 정유·화학은 안정적 수요처를 확보했다"며 "여기에 더해 우수한 인력, 정부의 민간 규제완화 등이 겹쳐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