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하반기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20' 시리즈가 공개됐다. 이번 시리즈의 특징은 '다운 그레이드'다. 무조건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만 골몰한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일부 성능은 전작보다 눈을 낮춰 원가절감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했던 걸까. 일각에서는 갤럭시 노트20 일반 모델 성능은 '보급형'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삼성이 기술력을 뽐낸 플래그십 노트20 모델은 최고사양의 '울트라'이지만 이 역시 실속을 따지다 보니 일부 성능은 종전 모델(갤럭시 S20 울트라, 갤럭시 노트10+)보다 낮아졌다.
◇이름만 '울트라?' 가격 따라 성능도
노트 시리즈로 볼 때 전작인 갤럭시 노트10은 '일반·플러스(+)' 두 종류였다. 이번 갤럭시 노트20은 '일반·울트라' 모델로 출시됐다. 상반기 '일반·플러스(+)·울트라'의 3종으로 출시된 갤럭시 S20 시리즈에서 '+'를 빼고 최고사양인 '울트라'만 가져왔다.
하지만 성능도 '울트라급'일까. 노트20 울트라는 S20 울트라보다 가격을 14만원 가량 내리면서 일부 성능을 낮췄다. 역대급 '괴물폰'이라고 불리웠던 S20 울트라와 맞비교하기보다 플러스와 울트라 사이쯤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른바 '세미(Semi) 울트라'다.
'세미 울트라'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카메라'다. 갤럭시 노트20 울트라에는 ▲1억800만 광각 ▲1200만 망원 ▲1200만 초광각 카메라가 탑재됐다. 100배 확대 촬영에 활용되던 4800만 화소의 망원 센서가 1200만 화소로 교체되면서 100배 줌 기능도 빠졌다. 100배가 아닌 50배까지만 확대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S20 출시 당시 울트라의 핵심 기능으로 최대 100배 줌 촬영이 가능한 '스페이스 줌'을 내세웠다.
이와 함께 비행시간거리측정(ToF) 기능을 사용하는 '뎁스비전(depth vision) 카메라'도 신작에선 빠졌다. 뎁스비전 카메라는 카메라와 사물 사이의 거리를 측정해 피사체의 심도를 파악한다. 스마트폰 전면에서는 얼굴과 손짓 등을 인식하고, 후면에서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콘텐츠를 구현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고용량 VR·AR 콘텐츠의 전송·수신이 가능한 5G 이동통신 환경이 갖춰지면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리즈에는 대다수 탑재되는 추세였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갤럭시S10 5G 모델부터 뎁스비전 카메라를 탑재했다. 하지만 노트10+, S20+에도 달렸던 기능이 노트20 울트라에는 빠졌다.
셀피를 찍는 전면 카메라도 갤럭시 노트10+와 같은 수준인 1000만 화소로 유지됐다. 갤럭시 S20 울트라는 4000만 화소의 전면 카메라가 탑재됐었다.
언팩 행사에서 카메라 기능에 대한 소개 비중이 비교적 낮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전까지의 언팩에서는 새롭게 도입된 카메라 기능이 중점적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지난 5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갤럭시 언팩 2020'에서는 카메라 기능 등 자체 기능보다는 갤럭시 기기간 연동성과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협력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빈부격차' 심해진 일반·울트라
갤럭시 노트20 일반 모델은 지금까지 출시된 삼성전자의 5G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중 가장 저렴한 119만9000원이다. 갤럭시S20과 갤럭시 노트10의 출고가가 124만85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만원 정도 저렴해진 셈이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성능에 비해서는 가격 인하폭이 적다는 불만이 나온다. 전반적인 기능과 사양이 이전 모델과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갤럭시 노트20 일반 모델은 갤럭시 S20과 사양이 거의 유사하거나 그보다 못하다. 디스플레이는 6.7인치로 약간 크지만(S20 6.2인치), 카메라 사양은 전면 1000만 화소, 후면 트리플(6400만 망원, 1200만 광각, 1200만 초광각) 카메라로 똑같다. 스마트폰의 실행 속도를 결정하는 램 메모리는 12GB에서 8GB로 오히려 줄었다.
노트20 일반 모델의 주사율은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모델 중 '왕따'라는 표현까지 듣는다. 주사율은 1초 동안 디스플레이가 화면에 프레임을 나타내는 횟수다. 주사율이 120Hz(헤르츠)라면 초당 120번 화면을 내보낸다. 높을 수록 화면 전환이 부드럽다는 의미다.
갤럭시 노트20 울트라 모델은 120Hz의 주사율을 제공하는 데 비해, 일반 모델은 60Hz다. 삼성전자는 노트 시리즈 중 처음으로 울트라 모델에 120Hz의 주사율을 적용했다고 했지만, 올해 출시된 갤럭시S20 시리즈는 이미 3종 모두 120Hz로 화면이 구현된다.
화질에도 차이가 있다. 갤럭시 노트20 일반 모델에 탑재된 슈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는 '갤럭시S10 라이트', '갤럭시A71' 등 중가 모델에 적용된 것과 동일한 디스플레이다. S20의 쿼드 HD+ 다이내믹 아몰레드 2X 인피니티오나, 노트10에 장착된 다이내믹 아몰레드보다 못하다.
뒷면 역시 일반 플래그십 모델에서 사용되는 유리 재질 대신 플라스틱의 일종인 강화 폴리카보네이트(Polycabonate)로 마감했다. 특수 코팅 처리해 후면을 글래스로 처리한 갤럭시 노트20 울트라와 유사한 질감과 느낌을 구현했다지만 '실속형 대체제'일 뿐이다.
또 노트20 일반 모델은 화면 가장 자리가 평평한 '플랫'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엣지 디스플레이가 노트 시리즈의 장점인 필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그러면 울트라 모델에서는 왜 엣지 디스플레이를 고수했을까.
삼성전자는 그간 갤럭시 S10e, 갤럭시 S10 라이트, 갤럭시 노트10 라이트 등 플래그십 모델 중에서도 저렴한 라인에만 플랫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사용성과 사용자들의 선호도는 논외로 두고 엣지는 '고급', 플랫은 '보급'인 셈이다.
노트의 핵심인 S펜의 성능도 다르다. 울트라 모델에 탑재된 S펜의 지연속도(레이턴시)는 전작 대비 80% 빨라진 9ms 수준이지만, 일반 모델의 S펜은 26ms에 그친다.
◇'노트' 탈 쓴 A시리즈?
이번 갤럭시 노트20의 스펙 변화가 노트 시리즈 판매량 증가를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울트라 모델을 메인으로 앞세우고 있지만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의 일반 모델을 들이미는 방식이란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갤럭시 노트20가 역대 노트 시리즈 중 최저 판매량을 기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가형인 A 시리즈에 S펜을 붙여 라인업을 맞춘 수준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뿐만 아니라 작년부터 부진이 깊어지고 있는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의 깊은 고민이 제품 스펙에 드러났다는 해석이다.
향후 노트 시리즈와 일반 플래그십 모델과의 차별점이 흐려지게 되면 새로운 폼팩터인 폴더블 모델에 S펜이 탑재, 아예 노트 시리즈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동주 SK증권 연구원은 "내년 폴더블 제품에 S펜이 탑재될 경우 노트 시리즈는 미출시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내다봤다.
실제 노트 시리즈는 다른 플래그십 스마트폰과의 차별성이 옅어지면서 판매량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첫 해 판매량은 갤럭시 노트8 1030만대, 갤럭시 노트9 960만대, 갤럭시 노트10 900만대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갤럭시 노트20 첫 해 판매량이 850만대로 전작 대비 5%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