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보툴리눔톡신 1호 기업인 메디톡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메디톡스는 앨러간(현 애브비 계열사)과 체결한 신경독소 후보 제품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이 지난 8일 종료됐다고 밝혔는데요.
메디톡스가 앨러간을 통해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던 보툴리눔 톡신 제품 개발 및 상업화도 전면 중단됐습니다. 메디톡스는 애브비로부터 계약금 6500만달러와 개발 마일스톤 3500만달러 등 총 1억달러를 수취한 바 있습니다. 해당 금액은 반환하지 않고 개발, 허가, 상업화 등 모든 권리만 메디톡스로 돌아왔습니다.
앞서 메디톡스는 지난 2013년 9월 앨러간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앨러간에 메디톡스의 신경독소 후보 제품들에 대해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에서 개발 및 상업화하는 독점권을 부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내 시장 판권은 메디톡스가, 일본 시장은 공동 판매하기로 했었습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크게 라이선스 계약 해지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파트너사에서 개발을 포기하면서 계약 해지를 통보하거나, 파트너사의 계약 미이행으로 국내 기업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한미약품과 사노피, 후자는 유한양행과 중국 뤄신의 기술수출 계약 해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만, 이번 메디톡스와 앨러간의 기술수출 계약 해지는 조금 달라보입니다. 당초 업계에서는 양사의 라이선스 계약이 제품 개발 목적보다 경쟁사의 미국 진입 차단을 위한 상호 '윈-윈' 전략으로 해석해왔습니다. 어느 한쪽에 귀책 사유에 따른 해지라기 보다는 '전략적인 결별'로 보여지는 이유입니다.
그 중심에는 국산 보툴리눔 톡신 후발주자들이 있습니다. 대웅제약은 미국의 에볼루스와 2013년 9월 파트너십을 맺고 가장 먼저 미국 진출했는데요. 공교롭게도 앨러간과 메디톡스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시기와 맞물립니다. 미국에서 앨러간의 '보톡스'는 보툴리눔 톡신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메디톡스는 균주 유출 의혹으로 대웅제약을 포함한 국내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과 대립 중이었고요.
대웅제약의 미국 진출은 앨러간에는 위기, 메디톡스에는 눈엣가시였습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죠. 앨러간과 메디톡스 공통의 적이었던 대웅제약을 견제하기 위해 양사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라이선스 계약을 이용했다는 데 힘이 실리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앨러간은 메디톡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이후 수년간 메디톡스의 제품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메디톡스는 앨러간과 계약을 해지 하지 않았죠. 이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과거 유한양행의 경우 뤄신사가 폐암신약 'YH25448'에 대한 기술수출 계약이행을 5개월간 차일피일 미루자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앨러간은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미국과 캐나다에서 글로벌 임상3상에 돌입했습니다. 메디톡스가 자사의 보툴리눔 톡신 미국 진출을 우선 시 했다면 앨러간의 계약미이행을 문제 삼았을 겁니다. 하지만 별다른 대응은 없었습니다. 그보다 앨러간과 함께 대웅제약, 에볼루스를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에 전력투구했죠. 소송의 쟁점은 메디톡스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균주 및 제조공정 기술 유출 의혹이었습니다.
긴 소송 끝에 에볼루스는 대웅제약을 제외하고 메디톡스, 엘러간과 3자 합의로 마무리지었습니다. 에볼루스는 향후 2년간 메디톡스와 앨러간에 합의금 3500만달러(약 380억원)를 지불하게 됐습니다. 특히 메디톡스는 합의 조건으로 에볼루스의 지분 676만2652주를 취득하기도 했는데요. 현재 메디톡스는 에볼루스의 주식 746만3652주를 보유 중으로 최대주주에 올라있습니다.
당초 궁극적인 목적은 대웅제약의 나보타(수출명 주보)가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양사 모두 소정의 목적은 이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앨러간 입장에서는 보톡스 경쟁 제품인 메디톡스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더 이상 체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어진 셈입니다.
메디톡스는 지난달 지식재산권 보호와 관련해 세계적 로펌 중 하나인 '퀸 엠마뉴엘'을 전격 선임했습니다. 미국에서 대웅제약과의 분쟁은 해결됐지만 또 다른 국산 보툴리눔 톡신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릴 준비에 한창이어서 입니다. 이는 앨러간과 이별하고 독자적으로 맞서기 위해 강력한 카드를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메디톡스의 다음 상대는 휴젤이 유력합니다. 휴젤은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툴리눔 톡신 '보툴렉스'의 품목허가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휴젤은 지난 2018년 8월 '보툴렉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자회사 '휴젤 아메리카'(HUGEL AMERICA)를 설립했습니다. 보툴렉스의 미국·유럽 판권을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크로마(Croma)와 합작사입니다.
휴젤은 90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70%를 확보할 계획입니다. 자회사 설립 이후부터 지난 2분기까지 9차례에 걸쳐 출자납입을 했고 현재 60%의 지분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메디톡스는 여전히 국산 보툴리눔 톡신의 균주 출처 의혹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가 강합니다. 앨러간과의 동행은 끝이 났지만 휴젤의 미국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업계에는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메디톡스가 '퀸 엠마뉴엘'을 선임하고 제2의 보툴리눔 톡신 전쟁의 서막을 알렸기 때문이죠. 메디톡스의 싸움에 '퀸 엠마뉴엘'이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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