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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본초학 대가에게 듣는 천연물 '종의 기원'

  • 2022.01.24(월) 06:55

김호철 경희대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교수
2003년 '뉴메드' 설립…동의보감 소재은행 구축
'천연물 표준화' 목표…"상업화 위해 힘쓸 것"

7년전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있다. 2015년 발생한 '가짜 백수오' 사태다. 백수오는 갱년기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한국소비자원이 백수오 관련 제품을 조사한 결과 이엽우피소 성분이 검출됐다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됐다. 이엽우피소는 백수오와 외관이 비슷하지만 독성이 있어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 이 사태 이후 국내 건기식 시장은 크게 움츠러들었고 백수오 제품 제조·판매 기업들은 막대한 피해를 봤다.

김호철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는 제2의 백수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천연물의 표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연물 소재의 기원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해야 안전하고 효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슷한 생김새와 이름을 가진 약재라도 효능은 제각각이다. 천연물의 특성상 채취하는 시기나 재배 방법에 따라서도 품질이 달라진다. 하지만 국내 천연물 소재엔 표준이 없어 연구자조차 '진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 교수는 천연물의 효능을 밝히고 규격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유전자 동의보감' 사업에 참여해 천연물 정보 약 1100건을 담은 동의보감 소재은행을 구축했다. 천연물 표본을 보관하고 분양하는 '호산본초표본박물관(본초박물관)'도 올해 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는 본초박물관의 설립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2003년엔 천연물 연구개발 기업 '뉴메드'를 설립, 천연물 기반의 건기식 원료와 신약까지 개발 중이다. 뉴메드를 만든 후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금은 학계로 돌아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김 교수를 만나 천연물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호철 경희대 한의대 교수. /사진=뉴메드

본초 '종의 기원'을 찾아가다

김 교수가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1980년대는 한의학 연구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시기였다. 세계적으로 덜 주목을 받는 분야인 만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서양 의학을 공부하면 새로운 연구를 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만 해도 한의학은 신비하다는 이미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척박한 연구 환경이었다. 당시 천연물 분야는 문헌 위주의 연구가 주를 이뤘다. 체계적인 연구 방법이나 실험 절차가 없었다. 한약을 달여 먹었기 때문에 한의사마다 용량이나 제조법도 달랐다. 정제(알약)나 과립제(가루약) 한약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본초(本草)'를 연구해 표준화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이른바 천연물에 대한 '종의 기원'인 셈이다.

김 교수는 한의학은 물론 화학, 생물학, 약리학, 신경과학 등 여러 분야의 교수를 찾아다녔다. 학기 중과 방학 모두 서울대 의대를 오가며 수업을 들었다. 실험을 통해 효능을 입증하는 방법도 이때 배웠다. 이후 미국 코넬대 의대와 존스홉킨스 의대에서도 교환교수를 지냈다. 그는 "서양 의학에서 사용하는 실험 방법에 한의학을 적용했다"면서 "예를 들어 인삼이 혈압에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매일 쥐에게 먹인 후 혈압을 체크하는 방식이었다"고 회상했다.

종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는 혼자 할 수 없다. DNA를 감별하기 위해선 생물학이 필요하다. 약의 효능을 평가하기 위해선 의학과 약리학을 알아야 한다. 그는 "실험도 해보고 천연물을 채집하거나 식물을 분류하는 것도 배우다 보니 여러 사람과 협업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모든 분야를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특정 분야의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뉴메드

천연물 표준화에 주력…본초박물관으로 탄생

김 교수가 설립한 뉴메드는 천연물을 활용해 기능성 식품, 화장품 소재 등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또 동의보감 기반 한약재와 추출물을 규격화하고 제조·분양하고 있다.  김 교수는 뉴메드에서 한의학에 첨단 바이오기술을 결합한 연구 플랫폼 'iMED'를 개발했다. 수천 년 동안 임상경험을 쌓아온 국내 한의학 정보가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iMED는 △해석(interpretation) △소재(Material) △추출법(Extract) △데이터(Data)의 네 단계로 구성돼 있다. 우선 천연물 정보를 과학적으로 해석, 가치를 판별한다. 후보물질을 찾으면 정확한 기원을 찾고 규격을 확립한다. 다음은 추출법 개발이다. 천연물은 추출법에 따라 함량이나 효능의 차이가 커서 표준 추출법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단계다. 천연물의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되면 비로소 제품이 될 수 있다.

동의보감 소재은행과 본초박물관 역시 천연물 표준화 작업의 일환이다. 그는 "동의보감에 등록된 천연물만 1233종인데 한의학 자료는 대부분 한문으로 쓰인 탓에 번역을 거쳐야 한다"면서 "논문에서도 기원이 다른 천연물로 연구해 잘못된 결과가 나온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동의보감 소재은행 사업에선 천연물 정보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약재 관련 본초학적 지식과 한약 정보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본초박물관엔 △한약재표본전시관 △석엽표본실 △한약자원 DNA은행 △유전자동의보감은행 등이 있다. 표본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것을 넘어 천연물 소재를 분양해주기도 한다.

천연물 상업화 미래 이끌 것

김 교수의 노력은 실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뉴메드는 어린이 키 성장에 도움을 주는 황기추출물등복합물(HT042), 위 건강 관련 작약추출물 등복합물(HT074) 등 총 5개의 개별인정형 원료를 보유했다. 개별인정형 원료는 기업이 자체 연구개발해 효과를 입증,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검증받은 성분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식약처 고시 원료와 달리 개별인정형 원료는 등록 후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는다.

김호철 경희대 한의대 교수. /사진=뉴메드

현재 개발인정형 원료 인정을 앞둔 원료만 10건에 달한다. 종근당건강, hy(한국야쿠르트), 코스맥스바이오, 두드림, 뉴트리코어 등 주요 건기식 기업에 원료를 공급 중이다. 최근에는 건기식 원료뿐만 아니라 신약개발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천연물을 기반으로 한 위염 치료제부터 뇌졸중, 치매, 중풍 등 적응증도 다양하다.

지난해 김 교수와 뉴메드는 경희대 한의대에 발전기금 10억원 기부를 약속했다. 기초한의학의 발전과 한의학 연구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다. 그는 앞으로도 천연물 소재의 표준화에 힘쓸 예정이다. 나아가 천연물 연구가 활발해져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상업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천연물 산업의 발전을 위해 추출물 생산 공장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도 있다.

김 교수는 "나에게 있어 한의학은 '운명'이다"라며 "의무감을 갖고 한의학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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