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의료계에도 '메타버스(Metaverse)' 열풍이 불고 있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융합한 공간이다.
의료계에서 메타버스의 활용 영역은 원격의료, 의료진 교육, 대체불가토큰(NFT) 기반 신약개발 등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다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 메타버스가 상용화되려면 원격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 메타버스…치료도 교육도 척척
의료계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싸이월드 서비스 운영 업체 싸이월드제트는 최근 팜젠사이언스, 엑세스바이오, 메디클라우드와 '메타버스-DNA NFT 기반 글로벌 원격의료 플랫폼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싸이월드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원격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병의원이 해당 플랫폼에 입점해 상담과 화상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또 유전자 정보(DNA) NFT화를 희망하는 회원 모집, 실물경제와 연동한 결제 시스템 구축 등에도 나선다.
팜젠사이언스는 DNA NFT를 신약개발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휴먼-마이크로바이옴 DNA NFT를 이용하면 신약개발 성공 확률을 높이고, 최적의 임상환자를 선별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엑세스바이오는 기존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과 메타버스를 연계해 미국의 원격의료 시장에 진출한다는 구상이다.
한올바이오파마는 메타버스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제공 업체 뉴다이브와 지원 협약을 맺었다. 뉴다이브는 발달장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원격 발달재활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뉴다이브의 플랫폼은 가상현실(VR)을 통해 실제와 비슷한 상황을 구현해 발달장애 청소년의 사회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해 참여자의 음성과 반응속도, 표정 등을 학습 및 분석해 맞춤형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 의료영상 플랫폼 업체 메디컬아이피는 의료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의료영상을 분석·가공해 환자의 해부학 정보를 메타버스 상에서 구현하는 원천 기술을 보유 중이다. 최근에는 대한해부학회와 MOU를 체결, 해당 기술을 해부학 연구, 교육 등 산업 전반에 도입할 계획이다. 양사는 △디지털 해부학 발전을 위한 공동 연구 △디지털 해부학 교육 사업 △ 의료 IT 생태계 조성 등을 함께 추진한다.
"실제 수술실 환경 구현 가능"
의료계에서 메타버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기존 의료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서다. 메타버스 환경에선 VR, 증강현실(AR) 등을 이용해 실제 수술실이나 실습실과 비슷한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교육과 실습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반복적인 실습이 중요한 의료 기관의 경우 반복적인 실습이 중요한데, 고가의 의료 소모품이 버려지는 비용 문제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전 시뮬레이션으로 실제 수술의 집도 정확성을 높이고, 윤리적 문제까지 해결 가능하다. 예를 들어 메디컬아이디의 3차원(3D) 프린팅 기술은 모형 장기를 모의수술 등에 사용하고, 수술 방법을 환자나 가족에게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메디컬아이피의 의료 VR 기술로 구현한 해부학 구조물을 이용하면 기존 카데바(기증 시신) 해부학 실습의 윤리적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미 메타버스로 상용화에 나선 대기업과 대형 병원도 많다. 메타(페이스북)는 지난 2014년 VR 헤드셋 기술을 인수한 후 의료 VR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의료 기술 업체 스트라이커는 2017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의 AR 스마트 안경인 홀로렌즈를 활용해 외과 수술실 설계 프로세스를 개선 중이다.
국내에서도 일산차병원이 지난해 6월 업계 최초로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가상병원을 개원한 바 있다. 메타버스로 원격 협진이나 환자 맞춤형 건강상담을 진행하는 병의원도 느는 추세다. 시장 조사 전문 업체 스태티스타는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AR, VR, MR 기술의 글로벌 시장이 지난해 307억달러(약 36조억원)에서 오는 2024년 3000억달러(약 35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의료 메타버스 활성화, 과제는
의료 현장에서 메타버스가 활성화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현재 국내에선 비대면진료 합법화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민 상당수가 전화 상담이나 의약품 처방 등을 경험하면서 비대면진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부터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했고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지속해서 찬성 입장을 보여왔다. 반면 의료 문제는 생명·안전과 직결된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비대면진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의료 메타버스 역시 실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메타버스 내 실습이나 교육과 관련해선 제도 자체가 전무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이나 약 배달앱, 약 자판기 등의 신사업이 나오면서 원격의료 관련 논의는 이어지고 있지만, 그 외 관련 제도는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대학병원 관계자는 "메타버스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과 기관이 늘어났고 학회나 강의에 이를 접목하려는 시도도 많아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직 현장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엔 디지털 전환 대한 인식이나 관련 법 마련 등 제약이 많은 실정"이라고 말했다.